<마지막 이야기>
26장부터는 19세기 – 20세기 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 청나라, 일본, 러시아-과 국제정세에 대해 심도 있게 논평합니다. 임오군란, 청일전쟁, 갑신정변, 러일전쟁의 원인과 결과, 사건 진행에 대해서도 논합니다.
사실 개화파들은 일본을 꽤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외국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메이지 유신을 통해 소위 ‘근대화’를 이룩한 것을 높게 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되고 실질적으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를 비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본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이 비석은(척화비) 1866년에 제조되고 1871년에 세워졌다. 뒤이어 천주교인을 처형하라는 더욱 준엄한 명령이 내려졌고, 외세를 배척하는 기운도 팽배했다.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으며, 서양종교도 포교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양종교를 믿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종로에 그처럼 당당히 서있던 그 비석은 이제는 없어졌다.
변화는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직도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서양인들을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거나, 그들이 스스로 물러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척화비까지 세워서 배척한 대원군과 수구파(척사파).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결국에 우리가 국제정세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나라가 외세에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백성이 개화되어 외국인들을 좋은 친구로 대하고, 시비가 있으면 합당한 원칙과 국제법에 의하여 해결하고,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의 군대를 주둔시키라고 요청하더라도 경비를 낭비해가며 결코 주둔시키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군대를 주둔시키고자 하더라도 합당한 명분이 없을 것이며, 우리가 아무리 약한 나라라 하더라도 국제 여론이 무서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해치려다가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을 해치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일동맹이 맺어진 이후 우리 정부 지도자들은 그 같은 정세를 분명히 파악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충고는 듣지도 않고 여전히 관직을 사고 팔며, 충성스러운 선비들을 못살게 굴고 거리낄 것 없이 백성들의 재물이나 탈취했다…”
“우리는 서둘러 마음을 밝혀 문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애국심을 길러 독립의 기초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일본은 매우 포장을 잘했습니다. 다른 동양인들은 몰라도 일본인들은 매우 개화되어 있고 개방되어 있다. 예의가 바르고 청결한 국민들, 그리고 외국인들을 환대하는 문화들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을 잘 복합해서 국제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열강들이 아시아에 개화사상을 퍼트릴 국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구역만리 떨어져있는 미국이나 영국 현지의 여론쯤은 어느정도 속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교술을 발휘하여 표면상으론 조선과의 합병이 무력이 아닌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조약, 영일동맹 등으로 나름 국제 사회의 지지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승만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은 테러집단들처럼 치부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무장운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조선에 있던 선교사들, 해외 재미 동포들, 독립운동가들이나 애타게 외쳤을 뿐입니다.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여전히 우세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좀만 더 깨어 있어 외세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외세가 들어왔을 때 그냥 의존적인 태도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전달됩니다.
물론 이미 때는 많이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지 살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문제에 대해 논할진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바이다.
만일 일본인들이 건너와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들이 전국 도처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일본인들이 그것을 원치 않겠는가, 그러나 현재 조약은 일본인들의 주거를 제한하고 있어 일본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인들은 그 제한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해제된다면 일본인들이 전국에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온갖 이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우리 자원을 개발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양 주재 일본공사가 우리나라의 황무지나 버려진 땅을 개간할 수 있는 권리와 산림과 하천, 늪지를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50년 동안 일본인들에게 허용해 달라는 요구를 대한제국 정부 외부에 보냈으며, 외교부에서는 그 요청을 내각으로 보냈다.
내각에서는 이 문제를 논의한 후 거절하기로 결정하고 외교부로 하여금 일본공사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했다. 또한 많은 관리들과 백성들이 상소도 올리고, 모여서 토의도 하고 반대하는 글을 써서 널리 전파하자,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이 시기에 일본이 경제적 이권을 가져가는 일련의 행동들을 취하자, 이승만은 의도가 불순함을 경고합니다.
이것이 곧 정치적 주권의 속박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독립정신의 핵심 사상에 대해 전달하는 글이기에 경제권 침략에 대한 아주 일부를 적었지만, 책에는 다른 내용들도 많습니다.
“슬프다!
대한동포들은 장차 어디로 가려든가.
이것은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논의조차 할 수 없다. 나라의 권리와 이익을 누구에게 팔아먹으려는지 또는 이미 팔아넘겼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오히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관한 문제를 자기 나라 정부에 이것저것 요청하며 시행해 달라고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우리나라에 백성이 있다 하리오”
이것을 알 수 없는 것은 ‘집권세력’이 과오가 드러날까,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이 같은 사실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호소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급하고, 급하고, 또 급한 일은 다른 무엇이 아니고 알려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라 형편에 행운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며, 정부가 어찌 되든지 상관하지도 말고, 또한 갑자기 정부에 반대하려 하지 말고,
각자가 나라의 주권을 보호할 만한 사람이 되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라의 형편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전파하여 하루속히 전국 모든 백성에게 다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의 책은 국내에서는 발간될 수 없었습니다.
꽤 오랜시간동안 이승만의 책들은 일본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출판됩니다. 그 때 미국인들을 위해 서평을 썼는데, 국내 이승만 연구의 선구자셨던 작고하신 유영익 교수님께서는 이 서평이 독립정신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며 감옥에서 형성된 정치사상의 집약이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이 책의 주요 목적은 동포들에게 서양세계에서 강하게 발달한 민족주의의 원칙을 가르치고 그들의 마음속에 미국 독립전쟁을 특징지었던 류의 독립정신을 촉발시키는 것이었다.
절대주의는 자기 민족의 독립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민족의 멸망을 예방하기 위해 낡아빠진 절대군주제 대신 인민들에게 일정한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는 입헌주의 정부를 도입할 필요성을 간파하였다.”
다시한번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란 무엇인가? 정리하면,
그것은 영국의 국교와 절대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종교, 정치, 경제의 독립과 자유를 선언했던 미국 독립선언문과 같은 정신을 촉발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독립선언문은 청교도들의 영향으로 성경을 기반으로 하며 미국 건국의 기초 사상이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기독교 기반 위에 세워진 새로운 자유 민주공화국, 후일의 대한민국을 건설할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의 옥중 회심, 선교사들의 아낌없는 지원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독립정신을 쓰신 후 한성감옥에서 나와 유학길을 떠나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계속 하던 중에,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승만은 우리의 독립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과 함께 한인회의를 열고 미국 독립선언문처럼 선언문을 작성하고 낭독합니다. 이 회의의 이름은 미국의 독립 이전 1774년과 1775년에 필라델피아에 두 차례 소집됐던 '대륙회의(The Continental Congress)'를 본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부의 권력이 통치를 받는 국민에게 나온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복리를 위해 통치권을 행사해야 한다.
우리는 가급적 미국의 정체를 모방한 정부를 수립하기를 원한다.
정부 수립 후 초창기 10년 동안에는 권력을 중앙정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수립 후 국민의 의식 수준을 미국식 정체 운영에 걸맞게끔 국민교육을 실시한다.
국민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그들의 민주주의 자치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그들에게 참정권의 폭을 넓혀준다.
국민에게 군(郡)과 도(道) 단위 지방의회의 의원을 선출할 보통 선거권을 부여한다.
도의회(道議會) 의원들은 국회의원(國會議員)을 선출한다.
국회의원들은 행정부와 권력을 적절히 분담하면서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국법(國法)을 제정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행정부는 대통령, 부통령 및
내각 각료들로 구성되며
이들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따라 행정을 한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이 선출한다.
대통령은 내각 각료, 도지사, 외교사절 등 행정부의 주요 관리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다...
우리는 국민교육이 정부의 어떠한 업무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믿는다.
사실상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하고,
기회균등의 보장,
건실한 경제정책의 추구와 세계 각국과의
자유로운 교역 등으로
전 국민의 생활 수준을 무한히 높이고자 한다.
출처 : 미래한국 Weekly(http://www.futurekorea.co.kr)
미국식 공화제 정부 수립, 정부 수립 후 10년간은 중앙집권적 통치, 참정권과 선거권의 확대와 부여 등 이런 모든 내용들이 우리나라 최초 헌법인 제헌헌법에 모두 반영됩니다.
게다가 1919년 이후 독립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승만은 독립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6가지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합니다.
1.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2. 새로운 문물을 자신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3. 외교를 잘해야 한다 4.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5.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6.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승만은 새로운 시대가 통상과 무역의 시대임을 알았습니다. 세계에 개방하여 통상하고, 상업을 장려하며 기업인을 육성하는 정책,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려면 외교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이나 강대국 사이에서 힘의 논리로 지배되는 국제정치는 국가들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자유주의는 수사에 불과하고 실제로 국제정치는 현실주의라고 했을까요. 그러니 특히 이 땅은 외교를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법을 위반하면 법대로 처벌받아야 하며,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해 개인적으로 처벌하거나 원한을 갚으려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법에 따라 공평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법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면 인심이 각박해진 것이니 그것만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양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하고 있는 것을 본받아 갖가지 인도적 사업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외교를 하려면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것은 법치로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것에 법을 지키고 법대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인도주의를 말하며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도적 사업을 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100년도 더 된 글이지만 너무나도 현대적인 생각입니다. 게다가 매우 이상적이기까지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잘잘못에 대해 분명히 하지 않으면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잘 먹고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제일로 여긴다.
그러므로 내가 고난 받는 것을 어리석게 여기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잠시 있다 없어지는 육신이 아니다.
의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육신의 고통을 이기면 이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나라를 위한 나의 목적이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 같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그것은 내가 그동안 받았던 고통에 대한 보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설령 내가 목숨을 보전치 못한다 하더라도 나의 충성심은 죽었지만, 나의 의로운 목적은 살아 있다.
의로운 목적이 육신의 고통을 이겼다 함은 곧 우리가 세상을 이긴 것이다. 후세에 그 영광이 영원할 것이며,
나 자신도 하늘나라에서 보상과 위로를 받게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의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적 수준에 이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 하며 썩은 곳에서 싹을 틔우고자 애쓰고 있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와 접촉할지라도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신학문을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그 효력을 얻지 못할 것이며,
외교를 위해 아무리 힘써도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도 서양의 앞선 나라들과 대등한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도덕적 의무를 존중해도 사회기풍이 한결같이 않을 것이며, 자유를 소중히 여겨도 자유의 한계를 몰라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에 근원으로 삼아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과 미국처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실질적인 통상, 외교, 정치, 경제의 제도적인 측면을 논한 후에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치와 윤리의 차원으로 넘어와 도덕관과 자유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로 근원을 삼아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말로 독립정신을 맺습니다.
이것은 이승만이 평생에 지키려했던 ‘기독교 입국론’입니다.
특히 마지막 말은 민주공화국의 핵심을 일반 백성들도 이해하기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의 도덕률(Moral)이 서양문명과 서구인의 가치관 기저에 깔려있어 사회 다방면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건국 초기 청교도들의 정신은 인본주의와 절대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황, 하나님과 왕을 같은 선상에 놓고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절대 교황권과 절대 왕권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을 최상위 권위로 두고 개인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청교도들의 자유 정신은 미국에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앞서도 언급했듯, 동의없이는 어떠한 권력에 지배받지 않으려는 하나님 앞에 성경을 소지한 ‘개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롭게 창조적인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뉴잉글랜드에서 마을을 이루고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 정부'를 세웁니다. 고대 그리스철학자들, 키케로, 어거스틴, 마키아밸리, 홉스, 루소, 로크 등 계몽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공화국(Republic/국가)에 대한 담론은 모두 '공공선(Common good)'이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로 집약됩니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이니 뭐니 하는 어려운 얘기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건국 초기 청교도들은 한마음으로 성경의 도덕률을 지키고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을 생각하는걸 실천함으로 공공선을 이루려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공화' 정신입니다.
이전에 프랑스의 정치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시대에 프랑스의 공화정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 고민이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어떠한가? 하고 가서 봤더니 너무나도 민주적인 공화정이 잘 돌아가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연구한 곳이 바로 뉴잉글랜드입니다. 청교도들이 정착한 곳이죠. 뉴잉글랜드는 계급 차별이 전혀 없다. 교회를 중심으로 민주적 자치가 되고, 남일을 내일처럼 생각하고 하는 바람에 공정한 재판이 있더라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체성은 두 가지, 자유의 정신과 신앙의 정신이다;
이는 청교도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나의 조국 프랑스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물론 어디나 인간이 사는 곳에는 흠결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청교도들의 신앙과 정신이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건국 초기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여 공화국을 세우는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이것을 근본으로 삼아 아시아 최초의 위대한 자유민의 공화국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에 관련된 글을 마무리하며..
독립정신은 이승만이 이루고자 한 '건국'의 기초 사상을 담은 책입니다. 이분이 한성감옥에서 나오시고 미국 유학길을 떠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시면서 독립정신이 실제화됩니다. 물론 이승만에 대해서 나뉘는 관점이나 비판할 점이 여러가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이제는 평가가 재고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독립운동이나 전쟁을 겪으며 목숨의 위협도 느껴보지 않았고 이 분과 수많은 선조, 독립운동가분들의 피흘린 유산을 거저 먹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학자들이야 모르겠지만 저는 이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평가 이전에 제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묻고 싶습니다.
또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맨 처음 쓴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저는 이 책을 9년 전 쯤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부터 대한민국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대한민국의 국민인 저에 대한 시선이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국내외 정치상황이나 이념과 사상이 매우 혼란스럽고, 많은 국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국민인 나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몇번을 이승만에 대해 써보려고 했는데, 기회와 시간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결심하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른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서 자유 없이 고통받는 동포들을 위해서 입니다.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과거 인터넷에서 우연히 북한 기독교인이 공개처형을 당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입니다. 꽤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아마 그 영상이 삭제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기독교인으로서,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영상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직도 총성이 3번정도 탕!탕!탕! 울리고 '아버지!!!'를 외치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말에는 교회가고 내 맘대로 살고 있는데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진정 순교라는 것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구나... 소름이 끼쳤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관과 신앙관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마치 종교개혁기에 성경을 소지하면 죽었던 개신교인들처럼 북한의 기독교인들도 성경을 소지하면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인권말살의 끝판왕인 정치범수용소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며, 북한은 전세계 50개국 가운데 기독교 박해가 가장 극심한, 김일성가 삼부자를 신으로 모시는 최악의 독재집단이요, 종교집단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과 이 나라의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면서, 제 마음 한켠에는 북한 동포들의 자유를 위한 마음과 무언가 떨칠 수 없는 책임감이 계속 자리하게 됩니다. 지금은 꽤 많은 분들이 정치범수용소 한번 쯤은 들어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이승만이든 북한이든 대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북한을 배우려 관련된 전공을 듣기도 하고, 여러방면으로 탈북민을 만나거나 북한 인권에 관련된 활동, 모임에 두루두루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라도 삶과 생업을 이어가며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나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신앙생활을 할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와서 미국 건국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자유의 정신이 대한민국에도 들어와 이렇게 누리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도 정치범수용소에서, 중국 국경과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북한의 기독교인들과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4조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이며 북한의 주민들은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이룩하여 이제 머지않아 북한의 많은 성도들과 주민들이 자유를 누릴 그 날을 소망하며, 한반도에 자유의 불씨를 어떻게든 남기려 반쪽짜리라도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께 감사함을 표합니다.
또한 앞으로 이 독립의 정신이 제 삶에도 계속 되고 우리 모두와 북한 동포들에게도 닿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부족하지만 보고 듣고 공부해왔던 것들을 나누고 미약하지만 자유의 목소리를 계속 외쳐보려 합니다..:)
참고문헌:
이승만, 독립정신
유영익,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젊은 날의 이승만
안병훈,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오정환, 세번의 혁명과 이승만
존 로크, 통치론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1,2
칼빈, 기독교강요
데이비드 반드루넨, 자연법과 두 나라
헤롤드 버만, 법과 혁명 1,2,3 (특히 3권은 영미권의 법 형성에서 청교도가 미친 영향에 관련)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324/112500048/1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9/08/13/2009081300051.html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2/05/2022120500104.html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2/08/2022120800110.html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2/23/2022122300050.html
https://www.chosun.com/opinion/2023/08/16/H3O6QSNBDFHSJHGP23YFWEKPIY/
http://www.reformanda.co.kr/history/111475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4
이외 다수 논문과 강의.
혹시라도 읽어보실 분들을 위하여 몇가지 추려 남깁니다.
읽은 후 직접 참고 및 배경 지식으로 사용한 책과 기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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