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한성감옥과 러일전쟁
백성으로서 죄를 범하는 것은
교화(敎化)가 안된 탓인 것을,
백성 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베풀 생각은 않고
그 죄 만을 다스리려 하니
죄수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급하다
이승만은 한순간에 거의 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성감옥의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고백처럼 마음에 찾아온 평안과 기쁨 덕에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주변에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도 감옥 서장 김영선은 개화파 대신 한규설의 절친으로 이승만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학당을 개설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예수를 믿은 후 사람을 교화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죄수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수 350여명을 소년반, 성인반으로 나누어 한글부터 세계지리등을 가르치고, 성경을 함께 읽고 강론하며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초급영어까지 가르치게 됩니다.
나는 감옥에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동포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끌려가면서 마치 내가 자기들을 구해줄 수 있는 듯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곤 했다.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가서 편안히 죽으시오’라고 고함을 질러주는 것뿐이었다.
무거운 칼 소리가 들려올 때
그 복잡한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장호익 장군도 우리 감방 바로 뒤에서
참수를 당했다.
그는 세 번째 칼소리가 날 때까지
계속 만세를 불렀다.
나는 요사이도 꿈 속에서 감옥시절의
이런 저런 장면을 보곤 한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 계속 머물러 있었지만, 감옥 안에서 계속 제국신문과 신학월보(신학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영한사전까지도 제작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조선이 망하고 국권이 넘어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조짐을 느낀 그는 모든 것을 멈추고 독립정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 정세를 아주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으로 인해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한 후에 친러파는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자 당연히 일본과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1904년 2월 4일 드디어 러시아에 선제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독립정신의 내용
독립정신은 총 51장과 후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0장에서는 조선의 상황을, 11-21장까지는 각국의 혁명과 제도의 차이, 그리고 미국의 정치제도, 미국의 독립선언과 독립전쟁, 남북전쟁에 대한 설명을, 22-25장까지는 백성의 의무와 자유의 한계, 26장부터는 19세기 말-20세기 초 국내 정세 속에서 청나라, 러시아, 일본 등 각국의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한 것을 각국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립정신 전체는 연설문의 형식을 빌려 비록 글로 쓰고 있지만 직접 백성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먼저 이승만은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국권이 넘어가려하는 상황을 태풍을 만난 배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왜 조선이 이렇게 나라가 넘어갈 지경에 처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신분이 높든 낮든, 관리든 백성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그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천만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데 대해 각자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나라의 독립의 기초를 확고히 세우거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동안 아무리 노력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기 전에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데에는 누구든 책임이 있다. 주목할 점은 원인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라 관리들, 침략한 외세에만 돌리지 않습니다. 물론 가장 먼저 양반 관리들의 잘못을 비판하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 백성들에게 잘못이 없어서라기 보단 권력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하지만 각 백성들도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고 봤습니다.
이는 각 개인이 독립적이고 주권을 가진 존재로서 책임있는 근대국가의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배재학당에서 배운 사상과 개신교 신자로서의 배경에서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개인이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신 앞에 모두가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사상은 성경의 독특한 인간관이며, 교황권이 득세할 때 잠시 사라졌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시점으로 다시 전면에 등장합니다.
즉, 각 개인이 ‘성경’을 소지하고 자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종교 권력에 지배 받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등장하는 문을 열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는 이러한 인간관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성된 마음으로 잘못된 무리와 나쁜 자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죄악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연약한 애국 동포를 대신하여 흉악한 적들과 싸우다가 장렬히 죽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영광된 죽음이요, 나라를 위한 죽음이다.
그런 죽음만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백성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위해 큰일을 도모할 때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 하는 것보다는,
의로운 일인가 아닌가를 따져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씨앗을 뿌린다면, 늦고 빠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기도 하고, 이곳에서 칭송받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식이 부족하여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영웅호걸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미래에는 그 사람이 간신이나 매국노로 지탄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장 보고 듣는 것만으로 판단하며, 무엇이 의로운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지혜롭고 거시적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인심을 초월하여 의로운 길을 갈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떤 어려움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몇 십 년, 몇 백 년 후에는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질 것이다.
역사상 빛난 인물들 중에도 당시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차차 세상에 알려져 높이 평가받게 된 경우가 많다.”
만약 우리가 이승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이상론자가 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알고 이 글을 읽으면 이것이 곧 그의 삶 자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한성감옥에서 막 죽음의 고비를 넘긴 상태였으니까요.
모두에게 일정부분 책임이 있으니 책임을 회피하면 안되고 ‘의로운’ 전쟁을 하다 ‘의로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공할 것인가를 따지는 사람들에게 성공과는 관계없는 ‘의’를 위한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승만의 목소리는 감동적이었습니다.
“고관의 지위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를 팔아먹은 죄악. 체통, 명분, 집착 나라가 무너져도 말 한마디 못할 자들”
“명망 높은 고관 중에는 정세 변화에 따라 재빨리 변신하여 재물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한 자도 많다”
“러시아 공사관을 의지해서 돈을 마구 찍어내 백성들의 살림 파탄에 빠트렸다.”
“한 사람의 범죄에 대해 일가친척까지 처벌하는 연좌제를 되살리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사람을 잡아다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재판하지 않고 4-5년간 감옥에 가둔다.
불에 달군 인두로 살을 지지고 온갖 방법으로 고문한다.
녹초로 만들거나 죽이기도 한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지 한달 정도 지나 갑자기 사형시키기도 한다.”
“부패하고 악랄한 관리들은 겉으로는 체통과 예절을 내세웠다…
가장 부패하고 나쁜 관리가 높게 평가받고, 그를 칭송하는 송덕비가 즐비하다.”
“일반 백성에 대해 말하면, 그들은 당당한 내 나라를 나와는 상관없다고 하며
나라를 돌보거나 보호하지 않고 내버려두어 국정이 문란해지고,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온갖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게 하였다.
사회를 돌아보면 사치하고 방탕한 일들이 범람하고, 음탕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백성들의 마음이 갈라져 2천만이 2천만 가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없고 모두 자기 생각뿐이다.
부잣집 자식들은 술과 계집과 노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고 있고,
가난한 집 자식들은 남을 속이고 빼앗더라도 당장 배불리 먹는 것만 생각한다.”
“거짓과 사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으며,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 후에는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부만 발췌하여 적었지만, 책에는 많은 죄악상들이 낱낱히 적혀있습니다. 후기 조선사회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었습니다. 백성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불법과 죄악이 판을 치고 있으니 그러한 무질서한 풍습 속에 있는 각 개인이 자신과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러시아와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승만의 생각은 독립운동의 방향이 외교와 교육에 집중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물론 이는 단기적인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백성들을 깨우고 세우는 교육에 평생을 다해왔던 것입니다.
그는 악한 풍습과 제도, 고루한 전통들을 갈아엎고 백성 각자가 독립적이고 도덕적이며, 자신의 일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과 나라의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좀 어렵게 말하자면 각자 모두가 독립적인 마음으로 자유로운 국민이 되어 도덕적으로 살아가고, 또한 나라의 일에 책임을 지는 공화의 정신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공식명칭인 대한민국 공화국(The Republic of Korea)에는 바로 이러한 '자유와 공화'의 정신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롭고 이타적인 국민들이 다른 나라와 교류하고 통상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정신 속에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11장-21장에서는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전제정(군주정), 입헌군주정, 민주정을 나눠서 설명하고 민주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정치제도, 독립선언문과 독립전쟁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입헌군주제도 각각 한 챕터씩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미국식 공화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제정은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정치로 우리나라, 청나라 그리고 러시아가 이런 정치 하에 있다”
“입헌군주정은 임금을 두고 신하가 받든다는 점에서 전제정치와 다르지 않으나,
임금의 권력행사에 제한을 둔다.
즉, 상원, 하원과 같은 의회를 설치하고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명망 있는 사람들을 국민들의 대표로 선출하여
나라의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여 결정하게 한다.”
“민주정치라 함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라는 뜻이다.
나라의 최고지도자는 임금이 아니라 대통령이라 하며,
국민들이 추천하고 지지하여 그 자리에 앉힌다.
그러고도 염려가 되어 임기를 4~5년, 또는 8~9년으로 정하고
임기가 다 되면 다시 뽑아 연임시키거나 다른 사람을 선출하기도 한다.
모든 관리들의 권한은 자세하게 규정하여 한두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해 수립된 정부라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부를 세웠으므로 국민들은 정부를 자기들의 집처럼 생각하며,
관리들은 국민들을 주인처럼 섬기고 보호하며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미국, 프랑스 등 몇몇 부강한 나라들이 이 같은 정치를 택하고 있다.”
저는 책을 읽으며 이승만이 민주제에 대하여 20세기 초 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보력으로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음에 매우 놀랐습니다. 지금도 누구에게나 민주정치가 뭡니까? 질문 했을 때 이정도 답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백년전 인터넷은 고사하고 감방에 오라를 쓰고 처참하게 갇혀있는 이승만이 민주정치제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 이승만도 이것을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설명하는 핵심구절로 인용합니다.
그 유명한 미국 남북전쟁에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링컨도 이 말을 어디선가 인용했습니다. 어디서 인용했을까요? 그것은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영국의 학자이자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John Wyicliff, 1320년경)로부터 였습니다.
그는 1374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사절단의 일원으로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게 됩니다. 당시 납세문제로 영국 왕을 부른 것이기에 그는 왕과 교황이 심각한 갈등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이후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교황이 돈을 밝히는 것도 문제요, 교회를 움직이는 것이 성경과는 너무 반대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위클리프는 '교회의 머리는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예수를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그리스도이다!' , '교회의 기준은 교황이 아니며 오직 성경뿐이다"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14세기 당시 소수의 사제들만 가지고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매우 위험한 일에 착수했습니다. 교황의 명령에 따라 성경 번역이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에 번역을 한다는 자체가 교황권에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번역이 끝난 성경의 서문에 바로 이 유명한 말을 적은 것입니다. '성경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이다'(The bible is for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그리고 위클리프가 내건 유명한 구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경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것이다!
그는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옥스포드대에서 가르친 '하나님 주권론'(신앙의 최고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담긴 성경이며, 교황도 이 권위 하에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과 '시민주권론'(성경을 각 개인이 읽음으로 하나님이 주인인 세상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다스릴 권리를 위임받아 다스린다)등의 논문들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습니다.
이러한 위클리프의 생각은 영국의 청교도들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카톨릭의 교황권이 왕에게 이양되어 영국교회의 수장역할을 했던 영국 왕과 직접 싸우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한 국가의 수장과 싸웠다는 점이 대륙의 종교개혁가들과는 달랐고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경향을 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왕의 권위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최고의 권위가 무엇인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에는 헌정질서가 발전하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법 아래 왕을 둠으로서 왕이 자신들의 신앙 생활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유를 확보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륙과 달리 절대왕권이 약화되고 의회가 강화되면서 시민적인 권리가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계속 박해받았고, 그들의 이상은 인간 왕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실현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신앙의 자유와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미 대륙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힘없는 백성들이 어떻게 강대한 영국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결심했는가,
그들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따라서 노예 대접을 달게 받는 사람은 곧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니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려 복된 터전을 마련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에서 비롯된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 내지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다.
그래서 우리 미합중국 대표들은 총회에서 우리의 정직한 의도를 세계의 최고 심판에 호소하며,
이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의 이름과 권능으로써 엄숙하게 공표하고 선언한다.
이 연합 식민지는 자유 독립 국가이며, 마땅히 권리에 자유 독립 국가여야 한다.
이들은 영국 왕권에 대한 모든 충성의 의무에서 해방되며,
대영제국과의 모든 정치적 관계는 모조리 그리고
마땅히 끝내야 하며,
자유 독립 국가로서 전쟁을 개시하고, 평화협정을 맺으며, 동맹 관계를 맺고, 통상 관계를 수립하며,
독립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일들을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가호를 굳게 믿으면서, 이 선언을 지지할 것을 우리의 생명과 재산,
신성한 명예를 걸고서 서로 맹세한다.”
이상은 이승만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일부 발췌하여 독립정신에 실은 내용입니다. 미국의 건국은 이 청교도들이 영국 왕을 절대시하는 국교(성공회)와 신학적, 정치적으로 큰 갈등을 빚었고, 박해를 받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대륙으로 온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후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메사추세츠 주에 자리를 잡게 되고 보스턴을 중심으로 하나로 연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거룩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를 세우려는 비전이었습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초창기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게 되자 돈이 필요해진 영국은 미국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청교도들의 도시 뉴잉글랜드의 보스턴에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에서 급진세력이 차가 담긴 궤짝을 모두 바다에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독립 전쟁을 촉발했다고 보는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그러니 독립선언서는, 서두부터 영국의 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존 로크의 통치론에서 인용한 성경 로마서의
'인간의 양심에 새겨진 자연법적 질서와 하나님의 법'의 개념을 바탕으로, 창조주가 부여한 권리인 천부인권을 말하며,
이 정신을 지키기 위해 독립을 선언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가호를 구하고 마무리를 짓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영국 왕으로부터 완전한 종교, 정치,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지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영국에서도 그랬지만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게 됩니다. 즉, 국가 권력에 의해 신앙을 지킬 자유가 제한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오히려 개인의 권리로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립전쟁 과정에서도 중부지역에 살던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매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선언문의 구절구절이 영국의 압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서 사람들의 용기를 불러일으켰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한 구절이다.
이 한 구절이 다른 모든 내용의 기초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게 되었으며,
그 권리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건국의 기초를 세웠다.”
이러한 성경의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날 때부터의 평등함을 주장한 독립선언의 정신은 건국의 정신으로 이어져, 남북전쟁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자유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사람들을 오랜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낡은 관습에 빠져있으면서 몸만 자유롭기 원한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법률을 제정할 때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도록 법률의 한계를 설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법률을 먼저 알아야 한다.
법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알게 된다.
그들이 법률을 어기지 않는 한
아무도 그들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공법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스스로 다스려 남의 지배를 받지 않듯이,
나라 또한 자기 나라의 권리를 보호하고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
이승만은 인간의 천부인권과 이를 위해 각 개인에게 자유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정신이 신학문에 있으니 많은 국민들이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켜야 할 법을 얘기함으로써, ‘법치(rule of law)와 준법정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권리를 보호하려면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제정은 인간에 의해 다스려지는 ‘인치’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서 정치의 성격도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대부분 안정적이지 못하고 독재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후기 조선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치를 기반으로 한 민주정은 최상위의 권위에 법을 두어서 그 법 아래서 모든 것이 움직이도록 하여 훨씬 안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법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는 앞서 언급했듯 영국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되어 미국에서 완성됩니다. 이를 이승만이 이어받아,
미국 독립선언문의 성경에 쓰인 천부인권, 자유에 입각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헌정질서 하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독립정신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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