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숨겨진 누룩,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로잔대회
(2부: 사상적 지주들)
이만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대부
WCC와의 교류, 80년대 통일운동, 90년대 남북나눔운동으로 조그련과 교류하며 대북지원 주도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민중사관으로 유명하지만,
교계에서도 사상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사뿐 아니라 민중사관으로 한국교회사를 집필했고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세웠음.
이만열.. 보수적 신앙과 진보적 사회참여를 조화시키는..
이만열은 여러차례 자신의 고신파 신앙 유산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이만열의 역사 참여는 믿는 대로 행동하는 고신파신앙 유산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으며, 더 멀리는 구한말 기독교인들의 반외세 반봉건 사회개혁적 의기를 본받은데서 비롯되었다. 4.19혁명, 5.16군사 쿠데타, 박정희 유신독재 등에 대한 이만열의 신앙적 응답과 그것의 표현인 사회참여적 신앙의 근거는 로잔언약이나 민중신학이 아니라 신사참배에 대한 저항정신이 깃든 고신파 신앙 유산의 결과였다
사회참여적 신앙이 치열하게 드러난 지점은 통일운동에 대한 투신이었다.
여기서 이만열이 직간접으로 관여한 스위스 글리온회의, 일본 도잔소회의, 1988년 희년 및 통일선언, 사단법인 남북나눔 등 주요한 남북교회의 교류 운동사를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복음과 상황 '이만열'의 특집 기사 중
안창호의 흥사단과 이만열
자신이 고신파의 후손이라 주장하지만, 신사참배에 저항한다면서 같은 태양신을 섬기는 북한 정권에는 어떻게 동조하는가? 매우 모순된 행위다. 고신의 선조들은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다 순교를 했는데. 고신 교단 교회의 장로라는 이만열, 손봉호 등은 사상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은 이만열씨와 연관이 깊은 것이 바로 '흥사단'이었다는 것.
흥사단은 다들 아시다시피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평양에서 신민회는 대성, 오산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했고 안창호는 실력 양성 운동, 교육을 강조한 선생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서북지역 출신으로 이 지역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안창호 선생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도 알려져있다.
그런데 바로 이만열씨가 흥사단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축사를 할만큼 안창호 선생을 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 기사에 '구한말 기독교인들의 반외세 반봉건 사회개혁적 의기를 본받은데서..' 이 대목은 바로 이 안창호 선생과 그의 동지들인 서북파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3042514048278425
https://www.mak.or.kr/html/info/pds.asp?skey=&sword=&category=&size=10&page=22&no=1407
서북파와 안창호
그렇다면 이 서북파는 무엇인가? 상해 임시정부의 분열에 먼저는 서북파와 기호파의 갈등이 꽤 컸다. 즉, 임정의 분열이 지역감정에 기반했다는 것. 단순히 서북파는 평민이 많고, 기호파는 양반이 많아서 갈등했다는게 아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조선조때의 지역 차별이 컸다. 서북지역은 크게 배척받아 과거에도 급제할 수 없었다. 양반이 없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여기서 이승만을 기호파로 여겼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승만은 비록 몰락했어도 출신이 왕가, 한양에서 정계의 중심에 있었다. 서북인들은 좋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윤치호의 일기에 심각한 갈등들이 언급 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지어낸 것이다 말이 많지만, 임정에서 이승만이 서북파의 핵심이었던 공산주의자 이동휘에게 심각하게 배척받았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승만은 동족에게 죽을까봐 몰래 상해로 가야만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이동휘를 부른 것이 바로 안창호였다. 다 같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엮여있는 사이였던 것. 이동휘는 레닌을 매우 추종했다. 이후 안창호는 오히려 이승만보다 공산당, 좌파와 손을 잡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되어 미국과 세운 남한, 대한민국 = 이승만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임정 내 기호파, 서북파 갈등과 서북파 안창호의 공산당 지지선언. 꼭 읽어보시길 부탁드린다.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1/31/2023013100179.html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2/07/2023020700168.html
안창호의 애기애타
게다가 안창호가 뛰어난 민족주의자였다 해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걸 확언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안창호의 사상에 영향받아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조만식 이후 오산학교의 교장이 된 유영모, 그 수제자들인 함석헌, 김교신을 보면 이들의 특징을 정확히 알 수 있다.
한국교회 분열을 조장한 이단의 뿌리에 두 거목이 있는데 하나는 칼 바르트와 WCC를 수용한 한신 김재준파고 다른 하나가 이 유영모-함석헌파. 유영모는 노장철학을 거의 도인 수준으로 통달한 사람이었다. 함석헌도 스승처럼 노장철학과 불교, 기독교를 섞어 토착화한 씨알 사상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흥사단은 함석헌의 씨알사상이 안창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관련 기사를 발췌해보았다.
내가 품은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해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나’를 중심과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어떤 철학과 종교 사상의 전통에서도 어떤 철학가와 도덕가에게서도 유영모와 함석헌처럼 ‘나’를 앞세우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유교는 극기(克己)와 수기(修己)를 말함으로써 나를 누르고 닦으려 했고, 도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내세우며 나를 자연의 법도와 질서에 순응케 하였다. 불교는 무아(無我)와 멸아(滅我)를 말하여 나를 부정하고 초월하려 하였다. 기독교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을 강조했으므로 무력한 자아를 구원할 타자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기독교도 나를 앞세울 수 없었다.
인간의 자아를 이성으로 본 서양의 이성철학에서는 자아와 타자가 모두 이성의 지배와 독점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억압하고 통제했던 이성철학은 주체로서의 나를 내세우기 어려웠다. 탈현대주의는 지배하고 독점하는 이성철학의 관념적 자아를 해체하고 욕망과 감정을 존중하는 우연과 차이의 다양한 세계를 강조했다.
그런데 안창호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에 대한 나의 의문은 깨끗이 풀렸다. 안창호는 시종일관 나를 중심에 놓고 전면에 내세웠다. 안창호는 나라를 잃고 종살이하는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의 독립과 통일 운동에 노장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씨알철학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안창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https://www.yka.or.kr/html/info/column.asp?no=19463
여기서 '주체로서의 나' . 서양에서 한축은 실존주의. 대표적으로 실존주의자는 카뮈와 사르트르를 꼽지만, 특히 사트르트는 사회 참여로써의 문학을 얘기했다. 그의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주체로 행동하는 자의 정치적 행동이 문학이라고 보았다. 본인의 정치 사상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문학. 순수한 문학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유의지를 매우 중시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낭만적 자유주의자들이 대대로 크게 발전시켰다. 위의 글에서 말했듯 서양에서는 자아와 타자가 모두 '이성'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 합리성이 크게 발전하기에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도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이때는 윤리, 도덕, 법칙 같은 것들이 자아를 통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기독교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자아'란 추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육신의 욕망, 자아를 죄악시하니까.
그런데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러니 자아를 '자기(self)'에, 대극의 합일을 이루어 통합시키고 주체적으로,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선이 된다. 서양의 기독교 문명을 망치로 부수어 버리자는 것이다.
철학사적으로 쇼펜하우어 - 니체를 이어 프로이트, 융이 심리학으로 이어받게 된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 '토마스 만'이 쓴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에서 말하길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과학의 실증이라기 보단 매우 관념적인 것임을 서술하고 있었다.
융은 사실 거의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무의식이라고 명명한 세계 속에서 점점 신비 체험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온갖 종교를 섭렵한 자가 융이다. 심령술사요 거의 영매였다. 68혁명을 주도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신좌파도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크게 영향 받았다.
새물결 아카데미, 새물결 출판사, 이분들이 주된 출판사 중 하나
김회권씨 이름이 많이 보임.
누가 후기 남긴게 있어 링크 걸어본다.
https://brunch.co.kr/@minnation/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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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중심과 전면에 놓고 ‘나’를 사랑하는 애기(愛己)의 원칙을 확립하고 ‘나’를 사랑하는 공부를 역설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공(公)과 사(私)를 함께 세우는 공사병립, 나를 바로 세움으로써 공의 세계를 열어가는 활사개공(活私開公), 건전한 민주국가를 건설하여 세계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세계대공을 말하였다.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스스로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가르친 도산은 새로운 기축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든 이다. ‘그(성현)의 시련’이 아니라 ‘나의 시련’을 노래한 김민기의 ‘아침이슬’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나를 형성해간다고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Love yourself(Answer: Love myself)’, ‘Map of the Soul(outro: Ego)’도 나를 중심에 놓고 나를 사랑하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라는 도산의 ‘나’철학과 일치한다. 도산의 철학과 사상은 20세기에 한정되지 않는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철학이며 ‘나’의 삶을 저마다 저답게 살려는 젊은이들의 철학이다.
- 윗 흥사단 글 중
: 이 글에서는 '방탄소년단'을 언급한다. 방탄소년단은 컨셉 자체가 니체, 융심리학을 기반. 이들의 곡에 빠지지 않는 사상가들이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방시혁이 분명 이런 세계를 잘 알았다. 전에 서울대가서 방탄의 곡은 '분노'로 만들어졌다고 말했으니. 분노를 광기로 만든 것이 니체다. 이들은 단순히 분노를 분노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디오니소스 신의 술에 취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기에 이들의 분노 표출은 신명난다. 서양식 한풀이와도 같은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이런 것에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땜에 유독 우리나라의 무속신앙과 좌파들은 뗄레야 뗄수가 없는 사이가 된다. 기독교의 조선식 토착화'와 ‘에큐메니칼‘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91년 호주 캔버라 WCC 7차 총회에서 당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 정현경씨가 '초혼제'를 지내면서 온갖 '혼'을 불러대며 '무속' 적인 제사를 지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토착종교, 철학에 기독교적인 것을 섞은 이단아들이 정치 활동을 했다. 이것은 좌파들의 제도권과 지하에서 모두 기능했다
어째서 한반도는 요상한 '주체'사상이 자리잡게 되었나?
북한의 수령신격화와 주체사상, 남한의 민주화 운동은 영향이 매우 크다. 앞서 언급한 김재준, 함석헌 등이 '원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남한에서 민중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게 된 사상이 민중신학이며 민중신학은 6-70년대 학생운동에 큰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사실상 마르크스주의는 극단적인 무신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그런데 이런 동양 종교와 철학이 결합한 실존주의를 마르크시즘과 섞어버린 것이다. '조선식 기독교'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서양에 대한 증오감, 불신도 한 몫했다. NL계열(주사파)이 세력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중'이라는 말도 매우 익숙했는데 민중신학자들과 너무나 연관이 깊은 것. 민중이라는 단어는 시대별로 변천사를 거쳤지만 기원이 그러하다. 좌파들은 이러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운동을 최근에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이어 대대로 동일하게 해오고 있다.
교계 안에서도 몇몇 교단 중심으로 퍼져온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WCC, WEA를 받아들여온 것이다. 로잔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좌파 정권이 들어선 때마다 이들은 더욱 번성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어떠한가? 그는 기호파임과 동시에 너무나 정통 기독교인이었던 것이다.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YMCA활동, 하와이에서 감리교회의 일에 관여했던 것도 있으나 미국으로 보내준 것도 언더우드 선교사였으며 워싱턴에 유학 당시 커버넌트 장로교회에서 세례받고 교회에 출석, 당시 가장 보수적이라던 프린스턴대에서 신학까지 1년 공부했다. 전생을 한국교회와 함께 했으며 무엇보다도 성경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이만열이 젊은 시절에 읽었던 함석헌, 김구, 장기려, 안창호, 신채호 등은…
그러나 이만열씨는 이단아들을 존경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한 사상적 지주가 되어 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에 관한 기사
https://www.hani.co.kr/arti/well/news/1047796.html
정현경씨에 관한 기사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53453
이만열과 통일운동
WCC의 도잔소회의 주최
도잔소 회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모르실테니 소개.
출처: 남북교회의 만남과 평화통일신학 NCCK
(기회가 되신다면 이 책도 검색해서 함 읽어보세요 기가막힌 내용들 많습니다.)
1984년 10월 29일 – 11월 2일, 일본 동경 근처 도잔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국제위원회가 주최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협의회가 발표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선언. ‘정의가 깃든 평화공동체’를 실현하는 선교적 과제의 제일차적 수행지역을 동북아시아, 특히 분단된 한반도로 보고, 그에 관한 협의와 토론을 거쳐 ‘도잔소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른 것이다(p2)
: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한신대)는 캐나다장로회에 영향, 변질되어 WCC를 들여온 김재준에 의해 세워진 교단이다.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WCC와 손을 잡고 82년 도잔소협의회 기구 발족 및 회의 개최. 하나님의 선교는 한반도의 분단 체제를 없애고 북한과 남한이 화해하는 것이라고 주장.
한국기독교장로회 회원교단으로 가입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창설된 이후로 줄기차게 갈라진 교회들의 일치는 물론 교회일치 자체는 분단된 세계의 일치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을 온 인류의 공동체적 일치된 삶을 이루는 노력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함을 누누히 강조하며 일해 왔다.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모인 제 6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교회와 세계의 일치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샬롬’의 구현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샬롬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의 보전이 삼위일체로 통합된 삶의 현장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밴쿠버 총회의 결의에 따라 세계교회협의회는 샬롬이 파괴된 현장, 그리고 샬롬이 회복되어야 할 현장을 맨 먼저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 찾아 선교적 과제로 삼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잔소협의회는 밴쿠버 총회 결의의 첫번째 실천협의회가 된 셈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평화의 구체적 실증이고 동시에 세계적 지평을 지니고 있다는 현실인식과 동시에 신앙고백적 결단의 중심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의 기치 아래 한국 교회는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70년대를 거쳐오면서 줄기차게 벌여왔었다. 여기에 본 교단이 선구자적 역할을 떠맡고 있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광주의 학살참극을 딛고 출발한 제 5공화국의 독재정권의 실체를 앞에 놓고 우리의 하나님의 선교운동의 현실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틀이 변모함을 실감했다. 정치적 억압과 착취 그리고 인권유린의 극복이 단순한 외형적인 정권교체로 이루어질 성질이 아니라 그러한 ‘제도적 악’의 구조적 뿌리를 찾아 극복하는 것이 근본적인 하나님의 선교의 현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의 분단과 함께 남북간의 체제와 이념과 사상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면서 상호간의 적대감과 적대적 공격성을 키워가고 그것을 분단 고정화 내지는 정권 안보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던 비극적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것이다. 비민주적인 구조악의 뿌리가 바로 분단에 있다는 현실인식이다. 예를 들어 반공과 국가안보의 구실로 분단은 고착되었다. 구조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은 곧 분단극복이요. 모두의 선을 성취하고 평화를 이루는 길이 민족통일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생겨났다. 그것은 분단이 샬롬의 파괴요, 통일의 샬롬의 길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선교를 분단극복과 평화지향의 통일운동으로 구체화하기로 결심한..
도잔소 선언이 담고 있는 중요한 사항을 세 가지만 간추려 보겠다.
첫째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화해의 복음의 구체적 실천의 결과요 목표라는 점이다.
둘째로, 평화통일은 남한 교회만의 일방적 선교과제가 아니고 남북한 교회 쌍방의 공동 과제라는 점, 그리고 이와 함께 북한 내지 북한 교회의 고립화가 아닌 개방화를 통한 비판적 협력을 강구했다는 점이다.
셋째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단순히 남북한만이 아닌 세계 교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점.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우리의 해외 교회들이 북한 방문 및 접촉을 통해 노력하되 반드시 한국 교회의 주체적 참여와 사전사후 협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위해 세계교회협의회의 총괄적 조정을 결정한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전제로 하면서 도잔소 선언을 읽어주기 바란다.
: 북한 정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게다가 WCC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종교적 주제와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결부시킴.
이러한 평화 통일을 가로막은 분단의 원인을 남한의 반공과 국가안보에서 찾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특히 남한이 반공과 국가안보를 위시한 독재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문제고, 이로 인해 분단체제가 유지된다고 하니 상호 이해하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것이다. 한반도를 점령한 공산, 불법, 인권 침해 세력을 용납하자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천명 이후부터 남한 교회는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남남갈등을 유발해가면서까지 북한 사회주의를 이해하려고 분투해왔다.
그 시발점은 1988년 2월 29일에 제 37차 NCCK 총회가 채택하여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언이다. 이것은 1984년에 일본 도잔소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도잔소협의회의 보고와 건의안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전망’과 1986년에 열린 제 1차 WCC주최 스위는 글리온 회의에 대한 NCCK의 응답이었다
: WCC와 가장 큰 교류를 하는 NCCK ; 여기는 그냥 정치 이익집단, 좌파 종북집단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NCCK가 어떤 곳인지.)
북한의 사회주의를 이해하려 심지어 '남남갈등'까지(남한 내부의 갈등)까지 일으켰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이 남한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임을 인정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여전히 남아있는 지역감정의 잔재이기도 한 것 같다. 오히려 일본보다 동족인 기호파가 더 싫고, 그래서 이승만보다는 김일성이 더 낫다는 논리. 그러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나 북한의 공산주의나 다를바 없고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남북나눔운동
분단 민족의 고통에 동참하려던 한국 기독교계는, 자기를 비우심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을 민족 통일에 밑거름으로 바치기 위해 ‘남북나눔운동’을 시작했다. 남북의 기독교회가 손잡고 서로를 나누고 공유하는 노력을 통하여, 이때껏 서로를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일방적인 이익을 추구하려고만 했던 남북에, 사랑과 화해의 가교를 설치해 보자는 것이다.
평화통일을 위한 ‘나눔운동’은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소유욕을 승화시키는 한편
사회주의 사회가 갖는 ‘형제애’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나눔운동’은 비단 남북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계의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민족의 통일을 앞두고 서로 손을 잡았다는 데서도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 남북나눔운동은 이만열씨가 대표로 북한의 칠골, 봉수교회와 같은 정권의 선전 교회들과 손을 잡고 대북 '인도적'지원을 한 것을 말한다. 좌우합작을 목적으로 하며, 게다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확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주의의 '형제애'를 확산시키려고 했다는 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북한이 진정한 사회주의인가? 그렇다고 해도 북한식 사회주의에 무슨 형제애가 있을까? 김일성 초상화를 불태우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며 연좌제 적용, 일가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반동의 낙인이 평생 찍히는 철저한 감시와 죽음의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모든 삶에서 제약이 따른다. 진급이 어렵다거나 인정받기 어려운 차별등이 매겨진다. 회사, 학교, 사는 동네, 어디 할 것없이 감시받는다.
하지만 선조중에 북한이라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만드는데 공적이 있으면 철저히 대우받는다. 그러한 공적은 또 어떻게 얻어낸 것인가? 자기 가족 중의 반동세력을 고발하여 부모 자식 할 것없이 적으로 만드는 것, 전쟁에서 살육으로 큰 공을 세우거나 거짓으로 아첨하여 받아낸 것이다. 곧 인간성을 어느정도 상실하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걸 '토대(성분)'라고 하는데 이런 사회에서 무슨 형제애? 형제애가 아닌 감시와 노예사회이다.
이문식씨가 현재 이사를 맡고 있는 '남북나눔운동'은 이만열씨 때부터 대북 민간지원의 대부분을 이끌며 북한의 국가 선전 교회들,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결탁하여 일을 벌여왔다.
1999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직을 맡았던 이만열은 그 자신이 복음주의 청년운동 1세대 ‘청년’이었다. 원남교회 주일학교, 서울교회 청년부, 할렐루야교회 청년부, 숙명여대, 남북나눔 연구위원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반도평화연구원, 복상에 이르기까지 그가 주도적으로 관여한 모든 곳에서 후학을 격려하고 제자급 동역자를 세우고 길러내는 데 힘썼다
특히 1986년에 결성된 복음주의청년연합(공정선거 감시단)과 1991년에 창간된 복상(복음과 상황)은 이만열의 제자 양성 사역에서 가장 많은 열매를 거둔 영역 중 하나다.
그와 복상 중심 동역자들과의 만남은 1980년대 중반에 이루어졌다. 박철수, 강경민, 이문식은 겨자씨 모임을 통해 활동했다. 특히 강경민과 이문식 등은 합동신학교 동창으로 서로 교분을 트고 교제하고 있었다. 1986년 창간호부터 대학기독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던 김회권은 거의 같은 시점에 이만열과 강경민과 교유하며 동지적 결속감을 형성해 나간다.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연)을 이끌던 이문식은 김회권과 더욱 빈번하게 교유했다. 김진홍은 1987년 김회권과 함께 서울대 중심의 복음 청년들과 집중적으로 만났고 복상 초대 발행인이자 재정지원자로 참여한다. 김진홍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남양만 개척 시절에 이만열을 초청하여 여러차례 한국 역사 강의를 들을 만큼 친분이 있었다. 이만열과 손봉호의 교제와 우정은 반세기에 이른다. 이만열과 홍정길의 우정과 사랑도 이에 못지 않다. 두 사람은 남북나눔으로 서로를 깊이 존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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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nk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70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913798
: 이러한 인물이 소위 로잔대회의 배후에 사상적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원과 대천덕 신부
앞전 글에서 이미 좀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저서 중에 핵심적인 사상이 담긴 내용을 인용 및 부연해보았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다시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본다. 이만열씨가 사상적인 아버지라면 이 사람은 거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만열씨가 WCC 회의 개최와 남북나눔운동으로 실질적인 민간대북지원을 이끌었다면 대천덕 신부의 예수원은 한국 에큐메니칼 공동체 통일운동의 성지다. 대천덕 신부의 사상을 깊게 살펴봄으로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성령의 코이노니아와 희년 공동체'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통일 한국을 위한 영적인 전제조건 1993, 통일논단>
너희가 교파 간에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권리가 없다
만약 우리가 교회 내의 분열에 무관심하면서 민족 통일에 관심이 있다면 거짓된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통일은 원하지만 영적인 통일은 원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 하는 자들입니다
한국 교회는 설교단과 신학교에서 진리의 나팔은 크게 붑니다. 그러나 자비를 행하는 일은 드물고 정의에 대한 관심,
특히 정의를 위한 실천은 더더욱 부족합니다
통일을 위한 첫째 조건은 남한 교회의 분열에 대한 회개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정의입니다.
대단한 뇌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재판에서 우호적인 판결을 받아 내는 것이 정의입니까? 돈 앞에는 모든 문이 활짝 열리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정의입니까?
너무 복잡하고 집행 불가능하며 옳지 않은(다시 말해 불의한) 법률에 의해 남한에서 땅 투기를 계속 허락하고, 아니, 부추긴다면(건물이나 집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땅 투기를 부추깁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자 땅 투기꾼들이 자기 부동산(땅과 집)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교회에 바쳤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게 될 때, 정의가 아니라 뇌물에 의해 움직여온 잔인한 체제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남한의 개인주의가 북한의 전체주의보다 낫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똑같은 겁니다. 자기를 섬기고 탐욕스럽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정의와 자비를 해치고,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요
북한의 전체주의와 남한의 무책임한 개인주의를 연결해 줄 중간 지대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코이노니아 현상입니다.
남한의 교회가 코이노니아를 실제로 행하게 되면, 북한 ‘공산주의’의 진짜 근원이 무엇인지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통일한국을 이루는 '영적인' 전제조건을 두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는 교파간 통합, 둘째는 정의의 실현이다.
교파간 통합 = 에큐메니칼(WCC의 종교통합), 정의 ='사회정의'(Social Justice / 해방신학).
= 대천덕 신부가 주장하는 '성령 있는 해방신학'
아래 '정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는 토지 사유권을 몰수하고 국가에 환수하여 임대하는 방식. 즉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듯 국가가 토지를 임대하고 세를 걷어 분배하는 식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남북이 결국에는 '코이노니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인데.
대천덕 신부의 글에서 '코이노니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냐,
남한이 지금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버리고 코이노니아를 실행하게 될때에 '북한 공산주의'의 진짜 근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놀랍게도 본인이 북한에서 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본모습이 코이노니아.
공산주의의 실체 = 코이노니아라고 직접 말하고 있는것이다.
과연 성경의 코이노니아가 공산주의인가? 실제 이런 의미로 주장한 것인가? 이 사람이 코이노니아에 대해 직접 정의한 다른 본문을 살펴보자. 신부는 공산주의와 무관한가?
<코이노니아-통일 논단-1993>
따라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이 말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선, 영어와 대부분의 유럽어에서 ‘공산주의’(Communism)라는 말은 기독교 용어인 ‘교제(Communion)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교제’는 코이노니아 번역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communion’이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왔고 ‘Koinonia’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 공산주의의 영어 표현인 커뮤니즘, 프랑스 혁명 때부터 코뮨이라고도 부르는 것이(communism, commune)이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 '커뮤니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 커뮤니언은 라틴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어라고 함.
공산주의(커뮤니즘) = 커뮤니언 (라틴어)= 코이노니아(그리스어).
이런 도식이 성립된다. 정치적으로는 커뮤니즘, 공산주의라고 하지만 기독교에선 그런 언어를 쓸 수 없으니 '코이노니아'라는 말로 대체 했다는 것 밖에는 설명이 불가하다.
정리하면 '코이노니아'란 자기가 생각하는 '진짜' 공산주의 사상인 것.
어느새부턴가 '코이노니아'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이던데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가 원인 중 큰 부분이다. 그가 말하는 코이노니아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언어를 무분별하게, 더군다나 교회라고 불리는 곳에서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주장하는데, 이 사람이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허상이다.
다음은 이 사람이 생각하는 '코이노니아'의 실체와 그 적용이다.
'성령의 코이노니아,
성령있는 해방신학'
'코이노니아'는 사귐의 영성이라고 불리며 이는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좌파 신학자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성령론으로도 유명. (성령의 역사가 해방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다. 성령론 말고도 구원론이나 기타 여러 등등에서 문제가 많은 인물)
몰트만이 앞전 글에 언급한바와 같이 운동권과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고, 특히 예수원과도 많은 공통점이 있기에 설명해보려 한다. WCC, 한신계열의 자유주의자들은 칼바르트와 밀접한데.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몰트만과 마찬가지로 '성령론', 특히 영성과 기도 운동에 연관이 깊은 인물. 그리고 단순히 해방 신학이 아닌 '성령' 있는 해방신학을 주장했다고 했다. 그러니 가장 연관성이 있는 몰트만부터 먼저 살펴보려 한다.
몰트만
http://www.reformednews.co.kr/11157
다음 글은 김명용 조직신학교수가 쓴 <몰트만의 영성신학>. 을 인용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령을 중생과 성화의 영으로 규정하고 이를 강조했다.
성령은 인간의 영혼을 중생시키고, 또한 이 영혼을 영적으로 거룩하게 만드는 영이 성령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몰트만은 전통적인 성령론에 대한 이해는 성령의 활동을 인간의 종교적 영역 속에 가두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성령은 인간과 세상의 삶의 근원이고, 에너지의 원천이다. 몰트만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카리스마적 경험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은 생동케 하는 '에너지'로 경험된다. 행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가까움 속에서 삶은 생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하나님의 능력의 '장의 진동' 우리 자신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카리스마는 역동성(dynamis) 혹은 에너지(energia)로 표현될 수 있다. 성령이 카리스마적으로 경험되는 방법은 옛부터 '흐르다' '부어지다' '빛나다'등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추리할 때 성령은 '삶의 원천'으로 빛나는 광채를 위한 '빛의 원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표현들은 유출설적인 표현들이다.
(생명의 영 에서)
소제목 3. 우주적 영으로서의 성령
몰트만에게 있어서 성령은 삶과 생명의 영인 동시에 우주적 영이다. 몰트만의 성령론은 하나님과 세상을 극단적으로 대립시킨 칼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과는 크게 대립되는 성령론이다.
몰트만이 성령을 우주적 영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과는 반대되는 의미이다. 곧 성령은 세상 만물 속에 존재하고 있고, 만물의 삶과 생명의 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이라는 의미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성령은 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체 속에 존재한다. 성령은 우주의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지속시키고 유지시키는 영이고, 동시에 우주의 생명을 완성시키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영이시다.
몰트만은 세상 속에 내주하는 성령의 활동에 대해 성령의 '케노시스(Kenosi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성령의 '케노시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속에 내주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세히나(셰키나)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들 속에 머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신 그리스도의 케노시스에 상응하는 용어인데, 성령께서 신음하고 고통하고 있는 모든 만물 속에 내주하시면서 만물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 넣으시고, 만물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를 만들어 가시는 성령의 활동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성령의 케노시스는 범신론을 위한 용어가 아니고, 만물 속에 내주하시는 초월적 하나님을 위한 용어인데, 이와 같은 몰트만이 주장한 것과 같은 신관은 일반적으로 범재신론이라고 불리워진다.
: 칼바르트가 몰트만과 크게 대립된다고 한 이유는, 쉽게 말해 바르트에게 하나님이란 '전적 타자'라서 인간과 접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유의 신으로 우리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초월성이 극대로 강조된다. 몰트만은 만물에 '내재'하는 하나님을 말함으로 이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몰트만이 언급하는 단어들을 보자.
하나님의 영은 에너지다. 능력의 '장의 진동'을 경험한다. 우주적 영이다. 케노시스. 만물에 성령이 있다는 범재신론.
몰트만은 이 언급 뒤에 '유출설'적 인 설명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유출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와 이단인 영지주의의 개념.
박찬호 백석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님은 '몰트만의 창조론: 신적인 자기비움(Zimzum)을 중심으로' 라는 논문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몰트만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이라는 아이디어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생명의 영>에서는 유출설의 전통이 지닌 장점을 통합하려고 한다:
“성령론에서 우리는 신플라톤주의적인 것으로 잘못 훼손이 된 유출이라는 개념을 채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유출을 통해 창조된 존재가 ‘신격화될’(deified)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것 안에서 영화롭게 된다."
몰트만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제한이라는 아이디어를 짐줌(zimsum)이라는 유대교의 카발라(신비종교)의 교리의 도움을 받아 발전시킨다: “짐줌은 집중과 집약을 의미하며 그 자신이 그 자신으로 퇴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짐줌 교리는 아이작 루리아(Isaac Luria)에 의해 발전되었다. 몰트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짐줌 교리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나님이 아니다.
“반대로 창조는 이러한 하나님 편에서의 자기 운동, 즉 창조에 그 자체의 공간을 허용하는 운동에 의해 먼저 시작된다. 하나님은 그 자신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그 자신 안으로 퇴각하신다”라고 몰트만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몰트만에 의하면 이러한 아이디어는 창조의 해석에 있어 필연적인 교정을 지시한다: “하나님은 단지 어떠한 것이 존재하도록 부르심에 의해서, 또는 어떠한 것을 세우심으로 창조하지 않으신다.
보다 심오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있게 하심으로, 여지를 만드심으로, 그리고 그 자신을 퇴각하심으로 ‘창조하신다.’ 창조적 만드심은 남성적인 은유들로 표현된다. 그러나 창조적인 있게 하심은 모성적인 범주들을 통해 보다 더 잘 표현된다.”
몰트만은 남성적인 범주들보다 여성적인 범주들을 더 선호한다. 그는 이러한 사상을 우주적 쉐키나를 통해 발전시킨다.
: 몰트만은 그의 성령론에서 일부러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을 적극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유대교의 카발라 짐줌 교리의 '자기 비움'에서 곧 성령의 '케노시스'가 나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어떤 변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다.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개입하는 신으로 그려지게 해석하는 걸 본적이 있다. 그래서 서양문명의 기초를 놓았다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과는 거리가 좀 멀다. 플라톤에게 선의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개념이며 도달할 이상이다. 그런데 유대적인 하나님은 도달할 이상이라기보단 끊임 없이 변하고 인간세계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적인 감정도 느껴진다. 그래서 둘이 반대의 개념을 말하고 있다 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양사에서 이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그리스의 신화가 지배하는 상대적인 세상에서 '진리'를 최초로 얘기했다. 그래서 소피스트들을 그렇게 싫어한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죽게 된 이유도 그리스의 신들을 모독했다는 신성모독죄로 죽은 것이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인간성에 대해서 비판하는데. 어째서 이런 것들이 신이라고 할 수 있냐고 의문을 품던 철학자였다. 인간과 신이 어떻게 같냐고 물었던 인물이었다. 신 자체를 부정한게 아니라 그리스의 신을 부정했다.
이를 이어받은 플라톤은 모든 사물에는 어떠한 이상, 이데아가 깃들어 있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은 명제처럼 고정되어 있고 인격적인 요소를 가지진 않는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부동의 동자를 말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양철학과 문명은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뒤이어 기독교가 융성하면서 절대적인 진리를 신봉하는 토양이 깔리게 된다. 누군가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을 얘기하는 이유가 기독교 문명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것의 기반에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 법에 대한 존중, 법치 질서라는 개념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서양인들은 그래서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이러한 사고에서 자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서 태동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도 법치에 있다. 그러면서 이성과 논리라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합리와 과학이 발전하게 된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크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과 이후 특히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의 태동으로 반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감정적인, 변하는, 자유로운 사상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조가 이후 포스트모던을 구성하게 된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을 보면 문학, 신화와 같은 어떤 '판타지'에 탐닉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몰트만 같은 부류는 이것이 어떻게 보면 성경의 하나님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는 그 신들이 인간과 관계하며 인간이 또 신이기도 한 세상 아닌가. 이런 사조는 이전의 그리스 로마의 철학을 거쳐 종교개혁으로 기독교가 최종 정착시킨 서양문명의 토대와는 반대되는 생각이었다. 어찌보면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 종교, 그 이전의 고대 문명의 신화에도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몰트만의 주장, 소름이 돋았다. 성령에 관해서는 자기가 일전에 부인한 유출설을 채택하여 유출을 통해 창조된 존재가 '신격화' 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인문학을 섞어서 거창하게 떠들지만 이전에 낭만적 자유주의자들 관련하여 설명한 것과 뉴에이지의 핵심사상에서 보듯.
인간이 곧 '신'이 되고자하는, 성경에서 인간이 '하나님 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 원죄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명용 교수는 바르트가 몰트만과 성령론에서 다르다고 말하지만, 몰트만이 바르트랑 설명하는 방식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단지 신과 인간 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방식만 다르다.
바르트는 앞전글에서 설명했듯 성경을 '자게'(설화)로 본다. 바꿔말해 고대 신화, 판타지, 문학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겐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신화다. 그리고 그 신은 '전적 타자요 자유의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파악을 못한다. 그러니 성경을 어떤 절대적인 진리, 이성과 논리, 사실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계신' 하나님을 말한다. 몰트만은 반대로 코이노니아, 사귐의 영성을 얘기하면서 내재신론을 끌어다가 바르트같이 성경이 신화라고 얘기하는것과 다를바 없으며,
더 나아가 모든 인류안에 '내재 하신 성령'으로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몰트만이 바르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르트보다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가 여러분들이 어려울까봐 이렇게 구구절절히 설명을... 이전 글 보신 분들은 더 잘 이해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우주적 몸', '우주적 신', '우주적 성령' 이런 단어들을 보라. 몰트만은 성령이 우주적 차원에 깃들어있다고 주장, 이 용어 자체가 잘 안쓰는 용어다. 특히 우주, 코스믹(cosmic)은 명상으로 영계를 체험하며 자아를 성취하는 뉴에이지의 단골 소재인데. 성령에 대해 말하는 건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모독하는 건 사하심을 받아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사하심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우주'(Cosmos)는 점성학(Astrology)과 연관이 깊다. 점성학은 인간 세계에서 천문학의 현상, 또는 천체 현상을 관측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점술로 타로점같은 것들도 이에 속한다.
고대에 점성학은 국가 중대사를 논할때 필수적이었으며 이런 일을 하는 술사들이 전문적으로 왕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박수와 술사들이 이런 자들이다. 이미 아주 오래전 고대 바벨론 문화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 복술과 점술을 철저히 금하고 이방인의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단어들을 보는데 덧붙여 양자 영성의 냄새가 너무 났다. 물리학 이론인 양자 역학과 기독교를 혼합한 대표적인 뉴에이지 사상이다. 양자 영성에서 성령은 빛의 원천, 에너지이며 인류의 거룩한 에너지이다.
특히 양자 영성은 성공회(Anglican)쪽에서 좋아하는 것인듯. 아래 링크도 미국 성공회 교회에서 가져온 것이다.
https://www.allsaints-agassiz.ca/podcasts/media/2020-10-25-the-holy-spirit-god-s-holy-energy-of-creation
영어로 Holy spirit Quantum spirituality 를 구글에 검색해보니 AI가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는데 가장 맨처음에 나오는 말이
양자 영성과 성령은 여러 방면으로 관련되어 있는데, 성령은 우주를(에) 하나로 연결하는(내재하는) 에너지다.
즉, 양자 영성은 성령을 빅뱅 이전의 우주의 연결에너지로 보는 입장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Quantum spirituality and the Holy Spirit are connected in several ways, including: The Holy Spirit as the universe's connective energy - Quantum spirituality views the Holy Spirit as the universe's connective energy, which existed before the Big Bang
뉴에이지의 키워드는 '만유범재신론'이다. 많은 뉴에이지 인사들은 새로운 세계 종교의 바탕이 되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내재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내재하는 하나님 이론은 뉴에이지 전도사인 레너드 스위트의 핵심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뉴에이지의 키워드인 만유내재신론을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만유(내)재신론 (萬有內在神論 Panentheism) : 만유가 신의 안에 속하며, 신은 만유에 내재하는 동시에 만유에서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이론 [All-in-God]. 쉽게 말하자면, 길가의 돌멩이나 나무 뿌리에도 신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 양자/만유/우주적 그리스도와 함께 뉴에이지의 대표적인 이단적 가르침
레너드 스위트는 그의 저서 “양자 영성”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 영성은 우리를 인류 가족 공동체의 다른 지체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연결한다. 이는 모든 피조물 자체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혁신적인 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범신론적이든 또는 초월신론적이든) 신의 내재함. 즉 우주의 영-물질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영성은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나 레너드 스위트가 말하는 (범신론적이든 초월신론적이든) ‘우주 만물 속에 들어 있는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지주의의 ‘하나님(적 존재 Divinity)’으로서 명백한 이단이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결국 만물이 하나님의 일부분이고, 우리 인간도 이러한 신성의 연합체를 이루어가는 주체로 결국 이는 구원을 이루기 위한 조건들이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얻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 죄를 사해주심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또한 오늘날의 많은 뉴에이지 교사들의 가르침을 본따서 레너드 스위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 세상은 인간의 유익 외에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과 목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 함께 그리스도의 우주적 몸을 구성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의 핵심 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주적인 신은 곧 우주 만물이며 깨달음을 통해 우주적인 신은 진화해간다. 또한 모든 인류는 하나이며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에너지가 발생한다. 말하자면, 이런 에너지를 통해 모든 인류는 우주적인 신(의 일부)이며 세상을 창조하는 주체(의 일부) 이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절대자이자 창조주가 아닌, 인간의 도움을 받아서 진화해야 하는 객체이다. 또한 그는 우리가 구세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은 에너지가 물질로 나타난 물질(?)에 불과한 존재이다.
반면에 모든 인류는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우주적인 신의 일부, 또는 그 자체가 된다. 아무리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해도 이는 인류=신, 예수 그리스도=물질, 또는 에너지라는 뉴에이지의 핵심 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래 기사에서 발췌
http://www.kctn.net/contents/news/newsPrint_Popup.asp?bbs_seq=547
결론적으로 몰트만의 성령론은 이 부분만 보더라도 심각한 뉴에이지며 신비주의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영지주의까지 차용하고 있다. 이단적 요소가 다분하다.
양자역학과 동양철학,
'모든 것은 허용된다'
후에 배덕만씨나 김회권씨 글에(특히 김회권씨)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물리학의 핵심은 '운동 역학'이고, 현대 물리학의 큰 부분이 양자 역학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이미 언급드린대로 몰트만이 쓴 글은 영지주의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뉴에이지, 양자 영성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이미 설명했다.
대체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놀랍게도 양자 역학 자체가 매우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서양문명에 기인하지 않고 동양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교양차원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말씀드리면. 자연 세계에는 확정된 법칙이 존재한다. 중력이라는 것이 작용하고 자연스럽다 생각하는 현상들이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관측되는 세계를 절대적인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세계라고 본다면 관측이 어려운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에 따라 우연성, 가변성이 따르는, 확정되지 않은 장이라는 것이다.
그걸 '불확정성(상보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실제로 관측 전까지는 입자가 입자냐 파동이냐 정해진게 아닌 상태라는 것. 정하기 전까지는 정해진게 아니라는 말.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 보어의 논쟁이 매우 유명하다. 아인슈타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보어의 제자인 양자역학의 창시자 하이젠베르크는 전기역학에 양자장론. 고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혼합한 그런 이론을 만들어냈다. 이런 차원이 우주에서 시공간의 양자장론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기존 고전 물리는 서양 문명의 흐름에 이은 절대 법칙으로 지배되는 세상을 말한다면. 이때부터는 서양 철학사, 과학사와 다른게 등장했으며. 보어는 이러한 자신이 발견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동양철학과 오히려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가문의 문장이 '태극'문양이었으며, 팔괘가 그려진 옷을 노벨 시상식에 입고 갔을 정도로 동양철학에 심취해있었다. 참 놀라운건 이 주역이 동양에서 사주명리학의 기본서적이라는 점이다. 참 의미심장한 것이다.
국내 양자물리의 권위자 김상욱 교수의 글에서도 이런 내용이 발견된다.
서로 대립되는 두 명제 중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 하지만 빛이나 전자는 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입자성·파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장자가 말한 ‘이것이 저것이고 저것 또한 이것’인 셈이다. 양자역학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혼재하는 이중성, 상보성이 자연의 본질이라는 것을 비로소 발견했다. 사진은 ‘상보성’ 개념을 제안한 닐스 보어가 양자역학을 이해할 사고의 틀로 자신의 예복 문장(아래 사진)에 새긴 태극문양.
이것’은 또한 ‘저것’이다. ‘저것’ 또한 ‘이것’이다. 장자(莊子)는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버린 것을 ‘도(道)’라고 했다. 대립되는 두 개념이 사실 하나의 개념이라는 생각은 동양인들에게 익숙한 철학이다. 음양(陰陽)의 조화라든가, 중용(中庸) 같은 것도 대립하는 개념 사이에서 옳은 쪽을 찾기보다 둘을 조화시키는 동양의 지혜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대립되는 두 명제 가운데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다. 이런 이분법은 선악개념에 기초한 기독교에서 친숙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대립물을 하나로 보는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닐스 보어는 가문(家門)의 문장(紋章)에까지 주역을 상징하는 태극도를 그려 넣었다. 노벨상 수상식장에 참석할 때에도 주최 측의 승낙을 얻어 주역 팔괘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참석했다. 덴마크 정부는 보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500크로네 화폐에 태극도를 배경으로 한 그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다. 이런 사실은 1987년 11월 7일자 동아일보 기획기사 ‘양자역학 푼 보어의 음양철학’이란 제목의 기사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주 명리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역에서 파생되어 나온 인간의 ‘운명 감정학’이다. 인간도 우주만물의 하나로 우주만물의 변화 과정을 따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사주 명리학은 중국 당·송 때 체계가 만들어졌으며 명·청 시대 때 발전되었다. 현재에도 중국 홍콩 대만 등지에서 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내용이 정밀고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주역이 전해져 주요 교과목으로 가르쳤으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주역·명리를 담당하는 정부부처를 따로 두었을 정도였다. 최치원, 이이, 이황, 정약용 등 대학자들이 주역에 조예가 깊었으며 세종대왕 등 성군들도 주역을 가까이했다.
주역과 명리학은 미신이 아니다. 동양의 철학이자 물리학이며 동양학의 원류이자 우리 삶의 전 분야에 큰 영향을 준 동양의 사유방식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708102101005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30108/52118774/9
팔괘는 주역이고, 주역은 팔괘로 상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서양인 과학자, '현대 물리학의 교황'이라고도 불린다는 보어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자리에 일부러 팔괘도가 그려진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의미이자 상징입니다
아래 신문 기사의 글 중.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3479
놀랍지 않으신가. 과학자들이 이런 걸 또 신봉하고 있다는게. 점술은 곧 과학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낭만적 자유주의자들은. 세상이 옳고 그름으로 나타낼 수 없으며 법칙으로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상을 받아들여 어떤 혼돈을 나쁘다 하지 않고 태극 문양처럼 둘간의 조화를 이루려 한다.
즉 이것이 중용이자 융이 말한 대극의 합일.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을 택할 수 있다. '의지'(will)을 자유롭게 한다. 곧 의지는 곧 '뜻'이라고도 번역 가능하다. 그렇다면 뜻을 자유롭게 한다, 맘대로 한다는 말인데. 신자들은 내 뜻(will)을 하나님의 뜻(will)에 복종 시켜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묻는 것은 무신론자에 다름아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말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 근데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이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sovereignty)과 그분의 뜻(will)'을 얘기하니 자유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고까운 것이다. 100년전에 이 땅에 이러한 복음이 들어와 순교의 피를 흘렸으며, 그 피 위에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을 세웠는데 지금은 이런걸 장로교회에서 조차도 듣도보도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구시대적이라며 오히려 앞서서 WCC, WEA, 로잔 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인터넷을 검색했을때 몇몇 교회에서 구역 공과 교재 1과가 이 내용임을 보고 아직 이 땅에도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가 있구나 감사했지만 말이다)
이들은 어느 것이 절대적이라 진리라 말하지 못한다. 정해지지 않은 무질서, 무법의 상태에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자들이기에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무정부주의, 권위질서의 해체, 공동체주의. 이런 것들과 연관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뉴에이지, 영지주의적인 개념을 차용해서 '에너지'를 '성령'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셨다.
이제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가 주장하는 성령론의 일부를 잠깐 살펴보자.
이 사람은 성령충만을 성령의 내적충분으로 나누며 '플레로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교계에선 '성령 충만'을 얘기한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에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는데. 내적인 것은 '충분'이라고 말하며 '플레로오'라는 헬라 원어를 가져온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라고만 말하면 안되고 '성령 충분과 성령 충만'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예수원 대천덕 신부의 강의를 인용한다.
배는 고기로 항상 다시 비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흠뻑 적시게'(be Saturated: 나무의 진액처럼) 할 수 없고 다만 '가득 채워지게'(be charged)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곧 이어서 대언(대언. 혹은 예언)을 하거나 어떤 능력을 행하게 되는데 이후에 다시금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밧데리와 같아서 능력으로 충전되지만 지속적인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내적인 역사는 포도나무와 같이 진액으로 가득 차 있지만 능력이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1)밧데리가 되거나 혹은 (2)하나님을 위한 포도나무가 될 수 있으며 (3)하나님께서 실로 원하시는 바와 같이 그 둘을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절실하게 와 닿은 사실은 헬라어 `πλεροω`(플레로오)와 `πλερηζ`(플레레스)등 어간에 'ρ'이 있는 단어들은 '흠뻑 적셔지다' 즉 장기적으로 충분하게 채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을 한국어로 옮길 때 "충분"이간 말로(흑은 다른 적합한 단어)구별해서 번역해야 합니다. 반면에 헬라어 핌플래미(πιμπλεμι)와 플래테오(πληθηω)등 어간에 'θ'가있는 단어들은 일시적인 충만과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능력을 덧입게 되고 즉각 대언(예언)이나 어떤 강력한 역사를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재 충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한번의 세례. 많은 충만"(one baptism, many fillings)이란 표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충만"이란 말로 정확하게 번역됩니다.
성령으로 충분하게 된다는 것은 거듭나서(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특히 8장에서 바울이 강조한 바와 같이) 새로운 피조물 즉 초자연적인 존재가 되며 성장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집사를 세웠던 자격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으며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스데반에 관하여 항상 사용되어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보수적인 교파에서 매우 강조해온 것이기도 하며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사용되어진 단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과 사가랴, 엘리사벳, 베드로에게 임했던 "충만"은 "능력으로 채워진다" 즉 "충전된다"는 뜻이며 성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잃어버린 영혼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7:21-23참고). 동일한 구별이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이 사람 "안에(in)"과 "위에(upon)" 임한다 즉 내적인 역사와 외적인 역사란 표현으로 시종일관 나타납니다.
부활절 날 주님은 제자들 "안으로(into:enefushsen)"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요20:22 ). 그렇지만 다시금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위로부터 능력으로 "덧입혀지기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후 오순절 이전에 존재했던 그들의 일치와 120문도가 규칙적으로 모여 "사도들의 코이노니아" (komonia of the apostles)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내적 충분함의 표시입니다. 이 표현은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성령의 교통하심'(The koinonia of the Holy spirit)과 사도신경의 '성도의 상통하심'(The communion of the saints)은 요한일서 1장3절에 언급된 바 교회와 성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코이노니아"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은(성령의 외적 역사인) 능력으로 충만함을 받고 3천명이 그날 세례를 받았는데 즉각 주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코이노니아'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다음의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동양에서 우리는 음(내적)과 양(외적)이 항상 합력하며 실체의 본성을 계시해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창1:27참고). 그것은 서양에서 흔히 강조되듯이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or)가 아니고 "양자 모두'(both-and)를 포용하는 사상입니다.
건강한 신학을 습득하려면 구약의 동양적 사고방식과 신약의 서구적 사고방식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약의 저자중 단 한사람만이 서구인으로서 의사인 누가였고 다른 모든 저자들은 구약에 통달했던 동양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됩니다. 한국의 신학자들은 그들의 민족적 유산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https://cafe.daum.net/lyh229494/diEq/12
일단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람이라도 잃어버린 영혼이라며 성령 충만만으로 안된다, 성령충만이 성령충분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다.
정리하면 성령의 내적 충분= 성령의 '내재'성 = 플레로오 = 음 = 악, 어둠 (가치 중립적)
굳이 왜 '내적'충분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일까 풀리지 않았지만. 뉴에이지의 핵심 사상이 내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니 충분히 연관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이들이 말하는 성령의 내적 충분이라는 말은 '성령의 내재하심'과 같다. 게다가 충분의 어원으로 얘기한 '플레로오'는 '플레로마'의 어원이기도 한데. 플레로마는 충만이라는 말로 영지주의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플레로마, 충만을 말하는 것은 당시 교회가 영지주의와 전쟁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사상을 반대하고 택자들이 받은 성령의 충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 이 단어 자체만 문제가 되는게 아니다. 이건 어떤면에선 본질을 가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무슨 '사상'인지 설명해놓은게 문제인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사상은 '음양'의 조화, '양자 모두'를 포함하는 사상, '대극을 합일'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신부에 따르면 둘의 합일이 '코이노니아'를 이룬다.
여태껏 설명드린바와 논지가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동일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대천덕 신부는 단지 성경에서 한참 벗어난 골방 철학자나 뉴에이저에 다름이 없음이 이렇게 증명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교회에 데려오고 지지하는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죄의 수렁으로 이끄는 도가 지나친 길을 걸어가신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칼 융과 태양신 숭배
몰트만이나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뉴에이지적인 요소 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칼 융'의 심리학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했다. 다음은 관련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20세기 초까지 신학 연구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초점을 맞춘 신정통주의 신학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신의 계시를 중시했다. 그런데 천문학이 발달하고 실존철학이 주도하는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체험하기 어려워했다. 과학과 이성적인 사고가 손잡고 발달하면서 초월적인 존재를 외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신론자들에 의해서 ‘신의 죽음’이 선포되고,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나 까뮈의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이 무신론의 세대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 신 죽음의 신학, 종교 없는 기독교, 세속화 신학이었다. 결국 기독교의 위상이 약화되면서 교회가 비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세태에 반대해서 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등장(이것이 유신론적 실존주의)했다. 그들은 인간의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고, 인간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이 그런 신학을 정립하는 데에는 인간을 종교적 존재로 보는 캠벨 같은 신화학자, 융을 비롯한 분석심리학자, 오토, 엘리아데 등의 종교 현상학자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그들의 신화 연구를 통해서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는 것, 인간의 무의식의 저변에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현대인의 문제는 그런 원천으로부터 이탈한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융의 심리학은 신이 살아있음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에 힘을 실어주었다. 융은 우리가 하나님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때, 하나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바로 몰트만이 주장하는 바) 그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 개념은 신학자들이 내재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세대에게 하나님은 초월적일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신학에서 내세우는 초월적인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생각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실상 신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고, 요한복음에서는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17:23)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2:20)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내주’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는 성령을 받는 것(요 7:39, 행 10:47),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 것(갈 3:2), 예수를 영접하는 것(요 1:12)에 관한 구절들이 나온다. 그런데 성령을 받는 것이나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단지 외적으로 어떤 물건을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예수나 성령을 자기 안으로 모셔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을 자기 안으로 모셔 들이면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교회에서 말하는 '내주'와 혼용중. 구원 받은 신자 아니면 성령이 거할 수 없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구원과 언약의 인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 이들은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성령이 '내재'한다고 주장. 그래서 몰트만이 만유구원론을 말한 것임)
이렇게 성경은 초월적인 하나님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내재적인 하나님에 대해서도 증언하고 있다. 정통적인 신학에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에 치중했지만, 현대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 뿐 아니라 내재성도 인정한다. 오히려 초월성보다는 내재성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의 내재성에 관심을 기울인 융의 심리학은 내재성을 중시하는 현대 신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인간 정신의 깊은 층에서 종교적인 기반을 찾아내고, 그것이 구체적인 종교사상이나 제의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탐구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이집트, 인도, 중국의 신화는 물론 기독교, 영지주의, 연금술 등에서 발견되는 여러 종교의 교리 속에서 원형적인 구조를 찾아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여러 가지 종교의 교의 속에서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담고 있는 종교적 상징들을 찾아내서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인간의 본성과 결부시키고 설명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472
물리학은 물리학, 철학은 철학에서 끝내야 한다. 누구든지 위험한 시도는 절대로 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과학과 섞지도 말고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아라. 신자들은 성령이 내주하시면 요한일서 말씀처럼 내 안에 기름부음으로 인해 저절로 말씀은 이해되고 읽히게 되어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바벨론의 태양신 숭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좌파 사상과 함께 북한을 사랑하는 이유가 더욱 명백해지는 것이다.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칼 융은 다름 아니라 태양신 미트라의 숭배자 였다.
융은 대극의 합일과정을 개성화라고 한다. 이러한 개성화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 심상법'이라는 방식으로 '무의식' 세계에 들어가 환상들을 보기 시작한다.
근데 리처드 놀이 쓴 융의 전기에서 말하길
그는 개성화를 이룬 '자기'의 모습을 '무의식' 속에서 환상으로 보는데 그것은 '태양신 미트라의 신상'이었다.
칼융의 숨겨진 위험 - 외국 칼럼
글 중 칼 융이 그리스의 밀교, 영지주의, 태양 숭배(sun worship)에 빠져있었다고 함.
https://www.douglasgroothuis.com/post/the-hidden-dangers-of-carl-jung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시대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남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음이 자명하다
모두 자기가 왕이요 주인이요 신인 세상에서 참 신이요 주인이요 왕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이다. 마라나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결론적으로 이들은 이단적인 좌파 사상가들이다. 성령께서는 에너지도 유출하는 빛도 아니요. 진리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고 절대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진리에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외에는 없다. 우리의 죄도 주님의 법정에서 정죄되는 법정적 의미를 가진다.
감히 이러한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말한다는 것. 칼 융 같은 주술가의 논쟁적인 사상을 끌어다쓰는 몰트만, 대천덕 신부의 성령이나 코이노니아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 성령의 코이노니아, 성령 있는 해방신학'의 실체는 간략히 이러하다.
코이노니아의 적용 1 (토지 공유제)
<탐욕은 우상숭배-통일논단-1994>
주체라는 말은 북한이 경제 부문의 투자와 개발을 위해 남한과 협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투자, 고용, 경제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땅 투기와 땅의 소유로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얻은 지대 지주들에 의해 형편없이 끌려다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땅을 ‘소유’ 하는 것은 바알을 섬기는 일일 뿐 아니라, 합법적인 도적질입니다.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탐욕을 회개하는 징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적 부도덕 배후에 있는 정서적 문제는 바로 어머니의 소홀함과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사랑에 굶주린 상태로 자라난 아이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저임금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걸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임금 문제에 관해 실로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토지법을 완수하고 선지자들이 요구했던 정의와 같은 기초를 세울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정부가 토지에 임대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토지가치세라 부르기도 합니다. 나라의 모든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어떤 개인이 아닌 국민 전체에게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됩니다. 실제로 복잡한 토지개혁처럼 토지 문서나 규칙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임대료를 걷으면 당장 땅값이 내려가 누구든 사업에 필요하면 적절한 값으로 땅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토지 가치세 또는 토지 임대료를 징수하기만 하면, 사업 비용이 낮아지고 적절한 임금을 지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한 방식으로 통일된다면 남한의 지주들이 북한으로 몰려가 땅을 사고 관리하여 북한에는 부유한 남한 지주가 소유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곳 남한에서 하나님이 명령한 토지임대제도를 세우는 데 방해가 될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토지 임대제도는 우리의 회개의 증거물이 될 것입니다
: 토지의 중요성을 이 사람도 안다. 토지의 소유권이 결국에는 자유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선 반성경적이며 사회주의 얘기를 하고 있음. 토지 사유 자체를 부인, 땅을 가지면 무조건 지주가 된다.
땅을 모두 국가 소유로 돌리고 임대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아무리 이걸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해도 이건 누가 봐도 사회주의일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 ‘의’라는 것은 right or wrong.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른가 아닌가 이런 의미이다. 이것은 가난과 무관하다. 가난한 사람이든 아니든 하나님은 법 집행을 공평하게 하라고 하신다. 송사를 굽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 구절이 분명 존재한다. 정의라는 말은 Justice로 이 사람이 말하는 정의는 사회정의, 즉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신해 나라에 정의를 회복시키시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다음의 글은 이사람이 생각하는 정의의 실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정의-신앙계-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1996. 08-09.>
정의란 어떤 것인지 가늠하게 해줄 구절들을 찾아봐야 합니다
빈곤을 널리 퍼뜨린 경제적 불공평은 많은 사람들을 이른바 기독교 사회로부터 몰아내 마르크스주의나 반기독교 운동의 품에 안기게 했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말합니다. 또한 성경은 가난을 최소화하는 경제제도를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는 근본적인 부분으로 규정합니다. 미가는 오므리와 아합이 가르치고 실행한 제도, 즉 지주 제도를 실행하는 국가에 대해 언급합니다.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주된 임무이며, 결코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이 해방신학적 관점)
: ‘복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사회 참여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이런 누룩이 배경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돈을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공산주의의 명제와 다를바가 없다. 좋은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소식이 아니다. 이것은 토지 임대법으로 구약의 희년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복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왜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하셨을까?
결론적으로 남한은 지주 국가이며, 북한과 별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통일을 위해서는 성령을 통해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정의의 실현이 한 목적이다. 이러한 정의의 실현은 지주국가에서 탈피해서 토지의 사유권 폐지, 국가에 토지를 귀속시켜 임대하는 형식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대천덕 신부의 ‘통일을 위한 코이노니아’라는 책은 온통 이런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코이노니아의 적용 2(하나님 나라 운동과 희년 공동체)
만일 다른 사람의 땅을 사용할 경우, 토지를 상환하는 희년이 될 때까지 원 주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토지 임대료를 주어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토지를 분배한 지 50년이 되면 따은 무상으로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 경제에서 이것은 토지가치세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세금이 아니라 임대료 또는 대여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땅의 원주인에게 지불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먼저 ‘인권’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또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목록에는 성경이 강조하는 토지에 대한 권리가 빠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만일 이 권리가 행사된다면 인권선언 목록의 나머지 권리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면 인권선언도 노예의 권리를 기록한 목록에 지나지 않습니다. 땅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유도 없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지주의 손에 달려 있거나, 그들에게 먹고 살 일자리를 주는 사람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천덕 신부 '통일을 위한 코이노니아' 중
다음은 대천덕 신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만든 단체인
희년함께에서 발간한 '희년'이라는 책의 머리말을 인용.
위기를 체감한 목회자들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교인들을 향해 선포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 진부한 말이 되어 버렸다. 큰 집회에 가보면 위기의 원이 기도와 회개 부족에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하자는 건지, 어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건지 불분명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회개하자", "말씀대로 살자"라는 기독교적인 구호에 자동으로 만세삼창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개는 총체적이어야 한다.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죄악과 사회적 불의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개인의 탐욕과 그 탐욕을 부추기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말씀의 근거가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여야 하며, 초대교회의 급진적 실천의 내용이어야 하고,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중세교회의 본질적 문제와 종교개혁의 한계,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한다.
시내산 율법의 주된 관심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로마의 불의한 시스템을 고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질책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의 사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여 주는 선교로 로마를 전복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모두에게 참정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교회는 희년에 가까운 제도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희년이 말하는 경제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도둑질, 즉 지대추구가 불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토지정의를 확립해 토지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같은 책에 1장, 숭실대 김회권 교수의 글을 인용해봅니다. 제가 앞전 소개드린 두 분의 대표적인 계승자이자 수제자. 책에서 김회권씨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학부 시절 내내 계속된 운동권 시위와 우리나라 민중의 이념적 생존 투쟁을 목격하며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던 저자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에 참여해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다. 그 후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젊은 날을 성경연구와 대학생 복음화에 투신했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에 매료되어, 개인 구원을 넘어 이기심, 계급 투쟁, 탐욕으로 찢긴 사회를 고치고 회복시킬 유일한 대안은 하나님 나라 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신학을 요약하는 사상을 희년이라 보았다.
다음은 희년에 실린 김회권씨의 글입니다.
1974년 로잔에서 열린 복음주의자들의 선교 대회 이후 복음주의 교회도 사회정의 추구가 중요한 과업의 하나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한국 복음주의 청년들이 창간한 <복음과 상황>은 로잔언약을 기치로 걸었다.
원래 복음주의 교회는 사회 전반의 기독교적 변혁보다 '개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복음을 구두로 선포해 결신에 이르게 하는 데 치중하는 교회'다.
복음선포적이고 개종유도적인 교회다. 복음주의 교회의 으뜸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28장 18-20절과 사도행전 1장 8절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모든 족속으로 그리스도의 제자 삼으라는 세계선교 명령을 지상명령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복음주의 교회와 달리 인류가 공통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생존 터전이 오이쿠메네(oecumene), 즉 공통의 살림살이터(household)를 기독교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치중하는 교회는 에큐메니칼 교회라고 부른다. 세계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애쓰는 모든 활동은 에큐메니칼 교회의 본령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사회일반의 공통적인 쟁점 영역에서 기독교적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광장참여'적 청년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박정희 유신체제, 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그리고 장기간의 분단체제로 인한 인권유린 등 모든 사회악의 폐해에 눈뜬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공의정치 실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성경적 토지정의의 입법화, 공정무역, 교회갱신, 교육개혁과 사교육 폐해 극복, 세상에 대한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 확장 및 교회에 대한 자기 비판적 담론 형성 을 위한 언론 운동, 기독교 윤리 실천 등에서 참여의 폭과 질을 넓혀 가고 있다.
이런 다양한 부문 활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통합시키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영토적, 제도적 그리고 인적 구성을 가리키는 것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희년함께' 홈페이지에 올라온 김회권씨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이들이 추구하는 '좌파' 사회주의가 뭔지 정확하게 설명한듯 하여 인용해본다.
저는 지금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숭실대 교목실장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에서 12년 동안 간사생활 하면서 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목회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역하던 그 시기가 1983년부터 1994년까지인데 이때가 유신독재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군부독재 과도기 시대와 거의 겹칩니다. 그러니까, 83년부터 87년까지가 유신독재와의 형식적인 단절이라면 88년부터 92년까지는 군사적 잔재가 있는 정권의 종결시기와 겹쳤고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우리나라의 운동권, 요즘 말하는 NL(민족해방계열운동권: 우리나라의 근본모순이 민족분단에 있다고 믿는 입장. 이정희, 권영길 계열)과 PD(민중민주주의 계열운동권: 우리나라의 모순이 민중과 억압적인 자본가계급의 갈등이라고 보는 입장. 심상정, 노회찬 계열)계열 등이 각축하던 캠퍼스 현장에서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고전적으로 믿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의식이 굉장히 발달한 기독교 신앙 전통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 답을 주지 못하고 바람직한 공동체 생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즉,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전을 이 지상의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민중의 아편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독교 신앙들의 유산을 연구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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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사회는 개인의 창발성, 사유재산, 개인의 편차를 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편차와 자유가 다 인정되지만 공동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음의 땅으로 몰아낼 만큼 특정 개개인이 ‘무한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사회, 그렇게까지 개인이 탐욕적일 수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가 희년사회입니다. 이러한 희년사회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국가가 각각 그 자체의 모순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모두 지향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거죠.
...
그러니까 사랑의 자발성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는 거룩한 무정부주의 상태, 즉 협동조합 상태, 공상적 사회주의와 같은 거예요.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이 없는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기대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보다는 성경의 이상사회 이상에 좀 더 맞는 거예요. 프루동. 생시몽, 오웬 등 이런 사람들이 맞아요. 계급투쟁을 통해서 얻은 사회주의는 계급투쟁을 유발하는 증오심을 연료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박해하고 죽이는 살인기계적인 정치제제를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안 됩니다. 아무리 단기간의 성과가 크고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공동체적인 자산을 향유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어요.
프루동과 바쿠닌
: 무정부주의, 협동조합, 공상적 사회주의, 프루동, 생시몽, 오웬(로버트 오언). 게다가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를 연구한 이만열씨를 생각해볼때 이들의 정치적 노선이 분명하다.
이 좌파 노선이 이들이 진짜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코이노니아'의 실천 및 적용이다.
이 말을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역사, 특히 제 1인터내셔널의 역사를 살펴보는게 좋다.
원래 좌파 운동에는 여러 분파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주류가 된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연대였던 인터내셔널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따라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프루동파, 그리고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논쟁하면서 굳어진 입지였다.
이미 프랑스 대혁명때부터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 이들은 제 1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 노동자 협회안에서 연대하게 된다. 이때 마르크스가 참가하고 정치 이론을 이때부터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마르크스앵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협회 내에서 완전히 확립된 상황이 아니었고 당시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았던 영국의 이익집단인 노동조합주의자들, 마치니주의자들을 포함한 이탈리아의 대표들, 프랑스의 프루동주의자들과 블랑키주의자들, 라살레주의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게 된다. 즉, 민주주의부터 무정부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급진주의적인 혼합체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당시 강령과 규약에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에서 나온 것과 같은 생산수단의 국유화 같은 것들은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공통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급진성, 혁명성을 기반으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추구하는 집단들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사상투쟁이라는 것을 내부에서 벌일 수 밖에 없었다. 전반기는 프루동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후반기에는 미하일 바쿠닌의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사회주의 운동을 생각하면 마르크스를 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때는 사회주의 운동 안에 이런 노선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프루동주의와 논쟁에서 마르크스가 비판한 것은 첫째, 이들이 정치 투쟁을 실제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는 것. 둘째, 프루동주의자들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협동조합'을 중시하는 점은 인정하나 조합의 분권적(권력이 분배, 분산)인 구조로는 어떠한 변혁을 일으킬 수 없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고립적인 운동에 그쳐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 장악이 수반될 때에만 미래 사회로 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은 최종적으로 1868년 브뤼셀에서 열린 총회에서 벨기에 대표가 제시한 생산수단 국유화 안건, 즉 광산, 채석장, 철도 등의 공동체, 다시 말해 정의의 법률에 종속되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에 속해야 한다는 안건이 통과됨으로 결론 짓게 된다. 그런데 이 부문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조력을 받는 협동조합이라고 명시하게 된다. 즉, 당시 이들 사회주의자들은 결국 국유경제의 중앙집중적인 계획 경제는 사회주의 공동체 건설과정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르크스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공산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프루동주의자들은 협동조합으로 그런 공산사회를 지향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 참여 이런 식의 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겠다. 폭력적, 정당정치에서의 정치투쟁은 지양하는 무리들.
다시 돌아와서 프루동주의와의 논쟁은 어쨌든 당시는 마르크스주의가 승리했다. 다음은 무정부주의의 대표자 바쿠닌과의 논쟁인데. 바쿠닌은 모든 권위 및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거부했고, 따라서 그 정치적 실천의 출발점은 자본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바쿠닌이 노동자계급 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들이 현재 지배적인 부르주아 국가 타도에 이해관계가 있는 유일한 계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 혁명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모든 정치적 행동은 거부했다고 한다. 혁명 외에 노동자들은 해방될 수 없으며 이는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봉기'에 의한 권력 장악을 추구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당이나 블랑키 같은 매우 급진적인 혁명 노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바쿠닌은 1869년 10월 28일자 편지에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 내에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하고 유능한 영향력있는 사람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국가 공산주의'라고 말한다. 즉, 국가 공산주의는 모든 재산을 국가에 집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힘을 국가에 집중시킬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와 바쿠닌은 바젤 총회에서 상속권 폐지 문제를 둘러싸고 처음으로 충돌했다. 상속권을 사적 소유와 국가의 기초라고 본 바쿠닌은 이걸 없애면 사적 소유에 의존하는 사회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봤다. 결과적으로 바쿠닌의 표가 꽤 높은 표를 얻게 되자 마르크스는 바쿠닌의 견해가 인터내셔널을 혼란에 빠뜨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의 논쟁은 파리코뮌 패배 이후 1871년 9월에 열린 런던 회의에서 재개되었다. 핵심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반대하는 바쿠닌에 맞서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를 정당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봤다. 유산계급(부르주아)의 집합적인 힘에 맞서려면 합법적인 국가 정당 권력에 기대고 이들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결국 인터내셔널을 바쿠닌이 장악할 것이라고 본 마르크스는 1872년 헤이그 총회에서 바쿠닌을 제명하게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 총회 불참, 그들에게 불리한 점을 폭로하고 뉴욕으로 총의회 사무소를 옮기면서 얻은 반쪽 승리였다.
이 총회 직후에 엥겔스는 아나키즘의 확산을 막으려
'권위에 관하여'라는 책 말미에
이 양반들은 혁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분명히 혁명은 존재하는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구의 일부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권위적인 수단인 소총, 총검, 대포로 또 다른 일부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승리한 당파는, 싸운 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자신들의 무기가 반동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
고 언급한다.
마르크스는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글에서 국가와 싸우는 것은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되는 일이고 임금을 둘러싸고 노동자계급이 싸우는 것은 임금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식의 주장을 '자유, 자치, 무정부'의 이름으로 노동자 계급을 '대포의 밥'이 되게 만드는 일이라고 야유했다. 어쨌든 국가 권력과 관련하여 극단적인 '반권위주의'를 주장한 것이 바쿠닌이었다. 필요하다면 그 국가 제도 자체를 없애기를 원한 것이다.
결국에 이들은 다같이 프랑스 혁명 이후 좌파 운동 안에 속한 것이었다.
근대가 상징하는 '국가'와 '권위질서'에 대항, 포스트모던 시대엔 다른 좌파의 노선으로 모습을 바꾸어 호소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프루동 주의는 생시몽, 오웬과 같은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상적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았기에 거의 비슷하고 프루동이 인터내셔널 안에서 주장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와 같은 과학적 무신론자나 국가 사회주의자들이 아니었으며 이보단 종교적이고 국가권력에 반대하며 지방 분권, 공동체주의적이었다. 프루동도 아나키즘을 주장했으며 EU와 같은 지역연합의 기반이 되는 사상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로버트 오언은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만들고 최초의 협동조합을 만든 사람이다. 실제로도 생시몽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오웬은 웨일스 지방에서 태어난 감리교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랑 연관된 단체들에 빠지지 않는게 웨일스 부흥인가..) 이렇게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교묘하게 섞여있기에 일반 성도들이 헷갈리게 되며 쑥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프루동
https://www.newsmin.co.kr/news/1632/
희년함께나 김회권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체화하면 이런 협동조합적이다.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국제 정치 중에서도 국제정치경제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부 때 이런 저서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정치 문화가 사회적 자본을 중시, 협동조합적인 경향이 있으며 또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근현대에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 그람시를 배출하기도 하지 않았나. 정치적으로 보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적지 않은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좋은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예를 들어 이들과 함께 하는 그 악명도 높은 성남 주민교회는 성남 태평동 일대에 협동조합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주민생협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들이 국가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 게다가 이들이 모여 대한민국 국가 전복과 부정에 힘쓰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김회권씨는 당시 NL이나 PD같은 운동권의 그런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라 '사회의식이 굉장히 발달한 기독교 전통'을 찾았다고 지칭하는 것이다.
김회권씨가 말하는 기존의 운동권은 무엇인가? 국가 권위 질서와 정당정치라는 테두리 안에 담론이 형성되는 전통적 공산주의(마르크시즘)노선을 말한다. 북한도 어쨌든 수정된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다.
자신은 기독교와 좌파 사상을 접목시킬 만한 것을 찾았기 때문에 생시몽, 오웬, 프루동같은 공상적 사회주의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다른 좌파 사회주의 노선을 따른다. 이것을 희년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 위에서 살펴본 신학들은 '하나님 나라 신학' 이라 표현. 그래서 이들의 하나님 나라는 '영토, 제도, 인적구성'을 뛰어넘는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 모두 '국가'를 형성하는 요소이다.
이들은 '공동체'라는 말을 매우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공동체라는 단어가 성경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이것은 이들에게는 어떤 권위 질서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채택된다.
프루동식의 협동조합운동을 하거나 공산적인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위에 언급했듯 이미 주민교회는 그 일을 하고 있으며, 최철호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라던가 박원순의 '마을 공동체 사업' 등이 다 이런 사상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천덕의 예수원도 마찬가지. 근데 안창호도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이상촌'을 세우려고 했다는 사실. 놀랍게도 연관성이 아주 뚜렷하다.
그래서 단순히 반공이라는 것으로만 우리가 이들을 알아보기는 좀 어렵다. 이들도 어떤 면에서 '반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내내 돈을 퍼다주지 않았는가.
하지만 역사를 살펴봤듯 이것도 뿌리는 좌파 운동의 또 다른 분파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터내셔널 때는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이 강력했다. 마르크스의 비판대로 아나키즘은 일종의 낭만주의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영국,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자유민주주의가 번성하자 갈길이 없던 좌파들은 68혁명을 계기로 학생들 사이의 저항운동, 반전운동, 신좌파와 NGO등의 비정부기관들의 활동에 침투했다.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 메인 테마이며 포스트 모던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게 된다. 문화적인 요소, 문화 막시즘이며 학계나 지식인 계층에 침투하기도 한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공동체 운동, 생태 운동으로 부활되고 있으며 고전적인 무정부주의와 달리 이데올로기보다는 삶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국가 시스템 즉 대한민국이나 북한과 같은 그런 국가 시스템 자체를 부정,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짙게 배어나온다.
김회권씨가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 신학'을 정리한 인터뷰가 있어 인용한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교수님의 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그것을 어떻게 형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칼빈의 하나님 주권 사상, 하나님의 영광 추구의 신학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즐겨 보는 책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입니다. 칼빈의 신학은 구원론적인 신학이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시하는 신학입니다. 교회론적 차원 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시하지요.
독일 고백주의교회 전통에 속한 신학자들을 예를 들면 칼 하임, 칼 바르트, 유르겐 몰트만, 헬무트 골비처 등 2차 대전 후 독일 신학자들의 주된 주 제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요한 크리스토퍼 블룸하르트 부자도 그렇고요. 그들은 유럽의 기독교 문명과 다른, 문화보다 외연이 큰 하나님의 통치야말로 2차 대전 이후 교회에 주어진 최대의 신학적 축복이라고 봤습니다.
하나님 나라 신학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전위 기관이지,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주장을 의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는 현대 문화와 자본주의 질서와 사회주의와도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신학이며, 지상의 기독교 문명과 궤도를 달리하는 초월적인 나라입니다. 헤겔이 말하는 첨단 시민사회와 같은 문화와 동일시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초월에서(미래로부터) 오는 나라입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한 인간 분투를 완전케 하는 하나님 주도적인 나라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재발견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이런 신학 전통 안에서 칼빈과 구띠에레즈가 화해하고, 블룸하르트와 레오나르도 보프가 화해합니다. 우리나라에 민중신학도 이 전통 안에서 서구의 정통신학과 화해합니다. 저는 김세윤의 바울신학과 칼 하임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요아킴 예레미야스의 신약신학이 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통합된다고 봅니다. 심지어 존 스토트나 로이드 존스의 신학도 이런 전통 안에서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에 '화해'하는 신학들. 그것은 나쁘고 좋은 신학은 없다. 그러니 음양이 조화하듯 대극의 합일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태극문양을 만들어야 한다. 동양과 서양을 섞어야 한다. 서양 종교인 개신교를 조선식으로 토착화해야 한다.
다 같은 맥락인것이 보이실 것이다. '성령의 코이노니아' 공동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
일반 성도들은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는 신학적인 지식들이 난무하다.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칼빈을 따른다. 보수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장로교, 침례교 등으로 이들은 모두 칼빈에 영향받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목회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한 사람이 맞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언약 말씀을 지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데에 청교도들이 목숨을 건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뒤에 독일 고백교회 전통의 사람들. 칼 하임,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등을 언급하는데, 바르트나 몰트만은 이미 언급했고. 여기서는 이들이 가장 먼저 빠져있던 종교 사회주의가 또 뭔지 알면 이해가 쉽다.
다음은 참여연대에 올라온 한 '좌파 목사'의 글을 인용해서 설명 드리고자 한다. (참고로 참여연대는 노무현 정권에서 큰 역할을 한 좌파 시민단체이다)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 사회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주의와 종교사회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이론이다.
종교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교회를 위한 운동이 아니고, 교회와 사회의 벽을 허무는 운동이었다. 교회가 되었든 세계가 되었든 모두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를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없으며, 오히려 '주권' 아래에 있다고 인정되는 교회보다 교회 밖, 속세에서 '주권'을 더 많이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 밖에 여러 '운동' , '현상'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찾자면 어떤 '이론'이 가장 '성경적'인지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사회주의는 사회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전통교회보다 세계 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의 실천적 역동성 속에서 종교적 의의를 찾았다. 그러므로 종교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처럼 마르크스주의를 교회에 반하는 이론으로 생각하지 않고 포용하려했다.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반종교성이나 무신성에서 불구하고 거기에 더 특별한 하느님의 경륜과 손길이 있다고 믿었다.
자본주의가 전성하던 시대에 노동자들의 참혹한 삶을 목도한 요한 블룸하르트(Joh n Blumhart)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교에서 종교사회주의의 불씨를 지폈고, 그 의 아들인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t)는 ‘하느님의 사랑’이 교 회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종교가 없는 사회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영역이고, 그 렇다면 마땅히 사회주의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생각했다.(세계의 사회주 의자 28-"예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참조)
하느님의 사랑은 그만큼 깊고 넓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당시 유일한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민주당의 당원이 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영향으로 나중에 종교사회주의의 지도자가 된 요(Joh), 뮬러(Mueller), 로츠키(Lhotzky), 쿠터(Kutter), 라가츠(Ragaz), 젊은 시절의 칼 바르트(Karl Barth), 에밀 부르너(Emil Brunner), 틸리히(Tillich), 하이만(Heim ann), 멘니케(Mennicke), 덴(Dehn) 등이 뒤따랐다.
(위의 융에 대한 글에도 나와있는데 융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한 사회민주당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이다. 라 가츠나 쿠터는 사회민주당이 사회 정의에 아무런 관심도 영향력도 없는 기성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가차 없는 채찍질”이라고 했다. 특히 라가츠는 사회주의를 “장차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빛”이라고 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같은 생각과 행동 방식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혹은 정치 일선에 직접 나서기도 했고, 혹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만 했다.
나중 모습도 모두 같진 않았는데, 라가츠의 경우, 1차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종교사회주의를 종교적 의미로만 국한 했다. 칼 바르트도 후에 “하느님의 의지를 특정한 정치적 지향점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면서 종교사회주의를 떠났다.
(이들이 사회주의를 포기한게 아니라 이런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68혁명에 영향을 줬던 사람들 답게 비폭력운동을 주장. 제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 마르크스 레닌 주의는 조지오웰의 1984지만, 이들의 세계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가깝다.)
배덕만씨의 <한국의 진보적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 초록에서 여태까지 말한 모든 것을 정리하여 그대로 옮겨본다. 신학자이자 성서한국의 김회권씨에게 영향 받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연구원이다.
한국에서 복음주의는 보수주의와 단순하게 동일시되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의 민주화운동과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의 반동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유형의 복음주의가 출현(신복음주의)하기 시작했다. 보수적 복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 나는 그것을 ‘진보적 복음주의’라고 칭한다. 이 새로운 유형의 복음주의는 몇 가지 중요한 기관과 조직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기독교학문연구회(기학연, 1984), 한국헨리조지협회(1984),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연, 1986),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1987),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1989)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1990년대 이후, 이것은 다양한 조직, 기관, 운동으로 더욱 확대・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잡지 「복음과 상황」(1991), 기독법률가회(1999), 교회개혁실천연대(2002), 성서한국(2002), 기독연구원 느헤미야(2010) 등이 연속적으로 출현했으며, 한국헨리조지협회는 1996년에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0년에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희년운동)과 통합하여 ‘희년함께’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 비슷한 운동을 개척하거나 주도했던 학자들이 IVP를 포함한 여러 복음주의 출판사들을 통해,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었다. 존 스토트, 크리스토퍼 라이트, 로날드 사이더, 리차드 마우, 짐 월리스, 토니 캠폴로, 브라이언 맥클라렌, 존 하워드 요더가 그런 흐름의 대표주자들이었다. 이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이 운동의 신학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신학적 원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 신학,” 로잔언약(1974), 기독교세계관운동, 해방신학, 민중신학,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 좌파가 한국에서 진보적 복음주의의 탄생과 성장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진보적 복음주의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비교적 진보적・개방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성경관은 근본주의자들의 것보다 진보적이며,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선 좌파적 경향을 보이고, 행동방식은 명백히 엘리트주의적 혹은 학문적이다. 이처럼, 진보적 복음주의는 한국의 복음주의 역사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 혹은 극대화하기 위해선, 특히, 대중을 포용하기 위해선, 자신의 엘리트주의와 학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독특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환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서구신학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6월 항쟁에 의해 헌법이 개정되고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87년 한국 정치세력은 여러 갈래로 나뉜 상황이었다. 군사정권의 잔여 세력은 노태우와 김종필로 나뉘었고 민주화 세력은 김영삼과 김대중, 백기완으로 분열돼 있었다. 야권의 분열로 노태우정권이 들어섰지만 1988년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였다. 이 교수는 그때 이후 몇년 동안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과 같은 개혁적 복음주의운동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데 개입할 여지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경제 문제, 계급과 분배 정의가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는 게 6월 항쟁 후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사람들 눈앞에 보였다. 그런 상황에 수구 세력을 향해서는 개혁을 외치고 계급 관점에서 판을 새로 짜려는 급진 세력에 대해서는 방어적으로 의제를 선점하려고 시작한 것이 경실련이다’
경실련 출범에는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 새문안교회 청년부 출신등의 영향이 컸다. 손봉호, 이만열 등 복음주의 운동의 리더들도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87년형 복음주의를 태동시킨 기저에는 사랑의교회와 온누리교회, 남서울교회, 영동교회, 할렐루야교회 등과 같이 기성 교회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 준 상식적인 교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 그 교회들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새문안교회나 영락교회, 충현교회,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 전통적인 대교회들에 비하면 이 교회들은 강남에서 이제 막 시작한 교회들이나 다름없었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초창기에 함께 했던 대형교회들과 결별하고, 세대교체에 실패함으로써, 물적, 인적 토대가 매우 부실해졌다. 이 운동이 초창기에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온누리교회, 남서울교회, 두레교회, 할렐루야교회 같은 대형교회들의 재정적, 인적 지원과 이만열과 손봉호로 대표되는 학문적, 인격적 지도자 그룹, 강경림, 이문식, 박철수, 강영안, 박문재, 김회권 같은 중간 지도자 그룹, 그리고 유욱, 박정수, 이승재, 김근주, 구교형, 윤환철 같은 청년활동가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보수화되거나 지도자가 교체되면서 이 운동에서 이탈했다. 그 결과,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은 가장 중요한 재정적, 인적 지지기반을 상실했다.
대중운동으로의 전환은 이 운동이 좀 더 교회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동안 진보적 복음주의는 천민자본주의와 극단적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또, 지성인들이 중심이 되어 서울의 대형교회들을 대상으로 개혁운동도 전개해왔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중소형교회들과 지방교회들 에게까지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쏟지 못했다. 이 운동이 한국교회 대부분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 채, 소수의 서울강남 엘리트 집단의 ‘동아리활동’으로 머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적 복음주의는 자신의 관심과 활동의 영역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형교회에서 중소형교회로, 거대담론에서 현실문제로 관심과 운동의 방향을 확대해야 한다.
: 하지만 이번 로잔대회를 보니 이들이 모두 규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지기반을 잃었다고 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같은 사람들, 교회들, 리더십들이었다. 짧은 머리말과 뒤이은 글들에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심경이 들었던 것 같다. 이 문제는 단순 로잔대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래된 한국교회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는 극히 일부를 요약해서 전달한 것이다. 추후에 더 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분명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한국교회 성도님들일 것이고 로잔대회가 왜 그렇게 난리인지 궁금해서 읽어보시는 것일텐데. 감히 한가지 질문 드리고 싶다.
과연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일까, 아님 시스템을 주관하는 사람이 문제일까?
자본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린 후에 위와 같이 토지를 모두에게 분배하고 그에 대한 토지세를 받은 후 코이노니아 시스템을 만들면 가난이 모두 해결되는 것일까?
가난의 원인이 무엇일까?
진정으로 회심했다면
문제는 시스템이 아닌 '나'이며 모든 인류가 없어지기 전까지 어떤 것을 동원해도 가난은 항상 따라다닐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문제점이다.
먼저 이들은 모두 인간이 이상적인 유토피아, 이상촌을 건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인간은 신이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입으로는 아니지만 인간의 선함을 믿으며, 한 인간들이 자신의 재산을 다 버리고 공유하면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이 아닌 구조가 해결되면 모든 것이 괜찮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구조(시스템)가 문제가 아니다. 그걸 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언제나 구조탓을 하는데 본질에는 자신의 의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깔려있다. 그래서 그렇게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한다. 사회정의에는 '내'노력 '내'열심이 들어가 있다.
오히려 이런 좌파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청렴결백한 경우도 많이 봤다. 대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실제로 경험한 적도 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로움에 대해 얘기했으며 그들은 누가보기도 추앙받을 만한 종교적인 열심과 의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핵심 구절은 '이신칭의'라고 할 수 있다.
이신칭의란 성경 로마서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복음에는 '내'의가 나타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 곧 내 죄로 인해 받을 심판이 예비되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참혹하게 죽으심으로 그 댓가를 완전히 지불하셨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다는 말이다.
내 죄를 죽음으로 갚아야 했지만 그 빚을 예수님이 모두 갚아주셨기에 나의 의, 공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죄인을 인간이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당신의 앞에 예비된 영원한 불지옥 심판이 효력을 잃게 되었기에 엄청난 기쁜 소식, '복음'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은혜로 믿게된 신자들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평생을 하늘 본향을 바라보며 나그네 순례길을 걸어가게 된다
진정 죄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구원에 공로가 있는가?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이 또 복음의 핵심이다.
생명을 얻은것, 죽은 것이 살아난 것이 바로 부활이다. 즉 구원을 얻은자는 '부활'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죄로 인해 죽은 우리가 다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즉, 죄로 죽은 우리가 영육이 다시 사는 것. 정죄감에서의 해방. 평안. 안식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요 자유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존의 한국의 보수교회는 안이야 어떻든 대부분이 이 말씀을 대대로 가르쳐왔다. 그리고 한국전쟁때 공산정권이 내려왔을때 목사님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죽음을 당했다.
예수께서는 한번도 물질이 풍요롭다, 가진 소유로 인해 자유롭게 된다고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광야로 끌려가 사단에게 여러 시험을 받아야 했고
결국 가장 먼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답변하신다.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앞으로도 더욱 알아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김회권씨의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면
먹을거리가 해결되지 않고 실업의 공포가 있는데 인터넷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준다 그게 자유입니까?
이렇게 반문하는 것을 많이 봤다.
땅에서 나는 소출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충족시켜 주는게 자유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김회권씨에게도 성령의 감화와 회심의 순간이 있었는데, 요한1서 말씀을 듣고 그랬다고 한다.
당시 서울대 기숙사에 살았는데, 신촌 이화여대 앞 대현동에서 서울대 기숙사까지 굉장히 멀었습니다. 그 거리를 142번 버스를 타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성경공부를 하려고 갔어요. 박정희가 죽고 한 달된 시점이었는데 9월 13일 처음으로 최루탄이 터지고 수업이 휴강되고, 학우들은 삐라는 뿌리는 등 매우 어지러운 때였어요.
그런 와중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많은 의심과 질문을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119가지 이유를 적어서 선배들에게 갖다 주면, 선배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논쟁을 피하더라고요. 그 많은 질문들에 이화여대 누나들, 서울대 형들이 지적으로 대답하려 하지 않았고 사랑의 이름으로 일부러 무능력하게 굴었습니다. 대답을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제가 거듭나던 그날, 뒤편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는데 요한일서 2장 15~17절 말씀이 박득훈 목자님의 설교 속에 유난히 크게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 말씀으로 확고부동하게 전향했습니다. 불멸의 가치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삶이 중요하구나. 육신과 안목의 정욕, 이생이 자랑 즉, 내 삶의 원동력이었던 두 개의 정욕과 하나의 자랑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 사이에서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인 그 분이 내 주가 되어야 하고, 그분을 따르다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깨닫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저에게 그 깨달음은 엄청난 계시였어요. 큰 은혜가 임해서 그동안 의심하던 모든 성경 구절이 깨달아졌어요. 그날이 1979년 11월 17일입니다. 지금도 그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저에게 다메섹 도상의 낙마 사건이었기 때문이죠. 1979년 5월 22일부터 11월 17일까지의 제 인생에 비춰 온 은총의 햇볕이 참으로 강렬했어요.
특히 요한일서는 적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며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서신서이기도 하다.
분명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맞지 않나 싶다. 그리고 지금도 김회권씨와 이들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뿐 아니라 또한 나와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지금 필요한 말씀이다.
나도 이러한 회심의 순간이 있었다.
학생때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아니어도 신앙의 어머니를 두며 모태로 교회를 다녔지만 나에게 신앙은 실제가 아니었고,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경에 대한 의심이 많았고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특히 교회 안에서 어떤 부정한 일을 보고 성경은 다 거짓말이라며 비판적이기 일쑤였다. 참 그래도 어떻게 계속 교회를 나간건지.. 지금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쨌든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왔다갔다 했고 매우 교만했으며 세상적인 즐거움과 명예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런데 힘든 시간은 나로 하여금 어머니의 하나님을 찾게 했고 나는 이때 새벽예배에 매일 참석하시던 어머니를 종종 따라나가게 된다.
어느 새벽, 목사님의 말이 잘 이해는 안가고 졸립기도 해서 일단 우두커니 앉아있었는데.
점점 그날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으며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신앙이 아닌 나의 신앙을 점차로 갖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전형적인 신자의 모습은 아니어도 여전히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신앙을 근근히 이어가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어쨌든 그때 내 마음을 울린 성경구절은 신명기 8장의 초반 말씀이었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8장 2-6절
예수께서 마귀의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고 한 시험에 인용한 성경 구절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 성경에 대해 큰 이해가 없었고 귀로 좀 들은게 있었기에 이게 마귀의 유혹에 예수께서 답변하신 거란건 잘 몰랐다. 들어본 말씀이라고만 생각했고 징계라는 말도 나오고 시험도 나오고 뭔가 무섭기도 한 말씀인데...
보기엔 따뜻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그런 말씀이 아니었고, 이전에도 교회를 왔다갔다하며 수도없이 다른 말씀을 들었지만
유달리 이 말씀을 듣는 와중에 내 모든 어려운 상황이 해석되면서
동시에 말할수 없는 평안과 위안이 마음에 찾아오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통해 나를 낮추시고 주님을 찾는가 보시는 것이며
동시에 교훈을 주시기 위함인데
사람이 떡으로, 즉 상황이나 쾌락이나 육신으로, 요한일서 말씀에 따르면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시라는 것.
이 어려운 상황이 이유와 목적하에 허락되었다는 걸 깨달으며 왜 이렇게 안심이 되던지...
피상적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실제가 되면서 믿지 못했던 성경이 점점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님이 내 의복이 헤어지지도 발이 부릍지도 않으시며 책임지시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명기 8장의 약속이 성취되는 삶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은 곧 내 인생의 첫번째 구절이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책 중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란 책이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책인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당시 유럽과 러시아에 팽배했던 사상들을 대심문관의 일화를 빌려 핵심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곧 대심문관의 생각이 진보적 복음주의자, 해방신학자, 민중신학자, 좌파들의 생각과 같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말한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에 결국 예수를 감옥에 가둘 수 밖에 없었다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보면 <대심문관>(the Grand Inquisitor)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를 배경으로 합니다. 스페인은 당시 인근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였지만 무서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 추기경이 대심문관이 되어 유대인을 포함한 무수한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죽였는데, <대심문관> 이야기도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종교재판 끝에 화형에 처해진 어느 여름밤이 지나고 이튿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500년 만에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심문관이었던 추기경은 예수님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날 밤에 대심문관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을 찾아와서 마치 이교도를 대하듯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당신은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요?” 대심문관이 던진 첫마디입니다. 그의 심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면 예수, 당신 방식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특별히 세 가지를 원하는데 그것은 기적과 신비와 권위다. 먼저 교회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기적이라는 게 뭔가?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현세적 이익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들은 절대로 교회나 당신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비가 필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의 올바른 삶보다는 내세의 존재를 확신시켜야 한다. 이들이 내세를 믿지 않으면 결코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위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는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권위가 없으면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단을 처형하고 잡아 가두고 하는 것 아닌가!”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친 복음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교회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수식으로 하지 않고 대중이 좋아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죠. 소설에서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도 합니다.
“당신은 마귀가 유혹했을 그때 왜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나? 그때 떡을 만들어줬으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하는데 왜 거기다 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고 했는가?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빵을 주었더라면 혁명도 안 일어나고, 도둑질도 없고, 굶어죽은 자식 앞에서 통곡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때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했으면 기독교는 지금 대단했을 것이다.”
대심문관의 말은 얼핏 휴머니즘으로 들립니다. 빵 때문에 죄를 짓고 빵 때문에 슬퍼하는 자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 말씀보다는 빵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빵이야말로 사람들이 믿고 따를만한 참된 기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지난 1,500년 동안 ‘대심문관’으로 상징되는 교회가 빵이라는 기적을 베풀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 왔는데 갑자기 예수가 나타나서 그 빵이 사실은 ‘돌’에 불과하며, 참된 빵, 생명의 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니 대심문관은 어쩔 수 없이 예수를 감옥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끔찍한 교회의 역설입니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이 일화와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놓고 하나님을 탓하며 나는 이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이런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는게 어떻게 신이냐 그러니 내가 신이자 구원자가 되겠다며 엄청나게 따지는게 스스로 대심문관을 들먹이며 자처하는 소설속 둘째아들 이반의 논지다.
그리고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의 삶이 그러했다. 너무나도 가난했고 평생을 가난에 쫓겨 살았기에 그것이 주는 고통을 너무나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의 결말은 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좀 다른 것이었다.
이들은 겉모양을 보면 매우 휴머니즘적이다. 오히려 폭압적인 모습이라면 누구든지 알아볼 것이다. 인류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차고 넘친다. 자기가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가는 예수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집에 가면 똑같은 인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 주인공 중 하나인 이반은 대심문관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한 이론을 주장하는데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말이었다.
즉, 자기가 모든 죄를 떠안겠다는 것이다. 내가 다 책임지고 내 손에 피를 다 묻힐테니 내 말을 듣고 인류는 맘대로 살아라. 내가 구원자가 되겠다. 얼마나 든든한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정죄받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그것때문에 정죄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얘기한다.
정죄감과 수치감이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그걸 느끼며 살아간다. 감언이설과 돈 등으로 마약을 주고 이를 해결이 아닌 마비시키며 맘대로 살아라.
너가 인생의 주인이다. 주체성을 가지며 살아라. 성경말씀은 다 거짓말이다. 신은 없다. 지금 이순간을 즐겨라.
이러면서 사탄은 대심문관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신자들조차도 이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딸려가게 된다. 전작 이승만의 한국교회핍박 마지막 글에서 바벨론의 창시자라는 니므롯에 대해 얘기했었다. 근데 바벨론 문명이 딱 이와 같았다.
그래서 이런 대심문관처럼 남미의 해방신학자들은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말씀이 대수냐. 눈에 닥친 가난에 저항한다며 마르크스 주의를 받아들였다. 근데 지금 남미는 어떤가? 빈부격차, 부정부패가 심하고 아직도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불법이민자가 난무하다. 마약, 범죄율도 매우 높아서 사회의 치안, 복지 수준도 엉망인 상황에 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민중신학자들이 이룩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가난을 해결해준건 민중 신학자들이 아닌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한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교회에서 울며 불며 이 나라를 살려달라고 가난을 해결해달라고 울부짖고 나가 열심히 일하던 어른 세대들이다.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자신은 못먹어도 자식은 먹이면서 뼈빠지게 일하던 세대들. 근면성실 나라를 위해서 해외까지 나가서 노동해 달러를 송금한 세대들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결국 조상 잘 만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그것만 해결하면 다 될 줄 알았더니 이제는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 우울증, 자살, 청소년 비행과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부패와 부정이 난무하고 묻지마 범죄, 연쇄 살인, 데이트 폭력, 사이버 상의 폭력 등 사회 범죄도 심각하다. 마약같은 것도 충분히 요즘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정치적인 분열. 사회 분열. 여전히 너무나도 고통이 많은 것이다.
가난을 해결해주겠다는 말이 먹히지 않으니 성령있는 해방신학을 주장하며 강원도 산골짜기에 예수원이라는 수도원을 지어놓거나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일하고 명상같은 것들을 통해 신비체험을 하며 현실도피하자 했다. 그런데 다시 세상에 내려오면 다시 영혼의 안식을 잃고 번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해결될 수 있는가? 이들의 방식으로 전혀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복음은 가장 먼저 가난을 해결해주라, 세상을 기피하라, 사회정의를 외치라고 하지 않는다.
복음은 인간에 대한 우상숭배를 그치라는 것이다. 인간이 구원할 수 있고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다. 회개하고는 세상속에서 한복판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다.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가?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죄짓고 내가 내 손으로 이루었다 교만하며 모든 것을 주신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죄인이기에 예수라는 구원자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며 항상 의지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수가 없는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때에 참 자유와 평안. 그리고 안식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또 이겨내는 것이다.
노예와 같은 삶에서 자녀의 삶으로, 불안과 두려움에서 사랑과 기쁨의 나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종교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죽은 자를 살리는 부활의 기적은 오직 복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신명기 8장의 이 말씀을 받은 후 몇년이 지났을까?
다시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매일같이 기도해도 마음에 안식이 찾아오지 않았다. 어떤 중대한 사건을 맞아야만 했는데 그게 해결되지 않을까 너무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내 마음속에 항상 있어왔다.
사건이 있던 하루 전, 이른 오전에 기도해도 너무 마음이 불안해서 텔레비전을 켰다.
평소에 기독교 방송은 별로 보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데 본문 말씀이 신명기 8장 말씀이 아닌가!
놀라서 눈을 비비면서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저 구절만이 아니라 8장의 뒷부분을 주제로 설교하셨다.
나는 계속 신명기 8장을 읽었어도 그 전까지는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신명기 8장의 이 구절이 귀에 생생히 박히는게 아닌가.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내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명기 8:15-16
이 모든 것이 결국에 내게 복을 주려 하심이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8년전쯤은 이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는 어찌나 생생히 들리던지 듣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복받는다는 말 때문에 운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언약하심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목사님의 입을 통해 전달되며 나를 녹여버린 것이었다.
믿음이 없었던 것에 대한 회개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그렇게 기도해도 편안하지 않더니 실제로 정말 전에 무슨 불안함이 있었냐는 듯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는 걸 경험했다.
했던 기도들이 그날 응답을 받은게 아니었나 싶다.
다음날에 있을 일이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담력이 생겼다.
다음날 그 사건은 내가 생각한대로 풀리진 않았지만, 내 마음이 변화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처럼 그 사건을 두려움 속에서 맞아들이지 않았으며 평안하게 담담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었고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게 된다.
그래서 그 결말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복은 아닐지 몰라도 나는 그것이 신명기에 약속하신 복이었음을 안다.
약속하신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믿음이 좀 더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결말이 하나님의 계획에 정확히 들어맞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한 몇년이 지나고 나서 또 깨닫게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사람들이 단지 배고프고 힘들어서만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단순히 그런 의미만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하면 살수가 없다. 육신의 배고픔이 있더라도 의미와 목적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신자가 아니어도 그렇다.
실존주의 배경은 세계대전 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좌절과 허무를 충분히 이해한다. 혹은 이들 마음에 찾아온 고통이 충분히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고통과 분노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허무주의와 실존주의로 극복해보려 하고 독일 낭만주의자들처럼 프란시스 쉐퍼가 말했듯 도약으로 어떤 영적인 체험, 신비 체험을 추구하고 이성으로부터 도피하려 해도 결국 맞이하는 결말은 광기 아니면 혼돈, 더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니체의 결말이 그랬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로 비참한 최후인 것이다.. 그러니 대심문관에서 이런 자에게 예수께서는 입을 맞출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비극에 눈물 흘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세상에 어떤 대답을 들려주려는가 ?
이는 세계선교요 대회요 세상을 변혁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니 뭐니하거나 속세를 벗어나 신비체험에 몰입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가장 먼저는 단순히 성경대로 살고 단순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거추장스럽게 입은 옷을 벗고 아주 오래전 선교사님들로부터 받은 청교도의 유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냥 자문하면 된다 성경 66권이 자신에게 정말 믿어지는지.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믿으려 '애쓴다'거나 믿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교회 다닌다면서도 너무나 많이 들어봤다. 이조차도 안되는데 어떻게?
참 우습게도 교회 안에서 지금은 이 단순한 걸 얘기를 못한다. 그럼 성도들이 재미도 없고 다들 떠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세상이 성경과 정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극도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심지어 조롱받고 있다.
그러니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그것만으로 되겠냐고 묻는게 아닌가.
가나안 성도들이 나오는 시대니 진리를 말하기 보단 말씀을 취사선택하며 세상 철학과 듣기 좋은 말들을 섞어가며 하지 않는가.
세상에는, 교회에는 이런 누룩을 잔뜩 섞은 빵이 필요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진심으로 복음주의 교회 안에 이런 것들을 섞어서 더이상 누룩을 내지말길 당부드린다. 요즘 여러분들도 스스로 날이 다한줄을 알아가고 있을 것이다. 공의의 주님이 다 알고 계신다. 타임라인이 이미 움직였다.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말세에 사탄이 자기의 날이 다한줄을 알고 성도들을 잡으러 간다고 했다.
그렇기에 선지자적 외침이라면 세례요한의 회개하라. 재림이 가까워왔다는 선지자적 외침만 필요한 것이다.
독자분들이 이들과 로잔대회를 단지 비판할 생각으로만 이 글을 쓴 것이 아님을 깨달으셨을거라 생각한다.
깊은 애통과 공부, 기도 위에 이 글이 쓰여졌다. 주님만 아실거라 생각한다.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얼만큼 이해하셨을지는 모르겠다..
김회권씨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다시 처음 받았던 회심의 자리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하는 바이다.
또한 다시 본질로, 복음으로 돌아가는 나와 조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너무나도 길고 다소 어려운 글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조국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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